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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6-6화) ‘독일 정신’을 품고 귀국한 자들1-한국 영화에 기여하라
  • 운영자
    조회 수: 252, 2015.08.15 10:07:02
  • 김태우1.jpg

     

    “이역만리 독일의 지하 1000m에서 38도를 오르내리는 찜통 더위 아래 60㎏짜리 쇠동발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깨달은 게 있다. ‘기적’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오직 근면과 땀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절감했다.”

     

    영화 촬영장비 대여 및 촬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신영필름’을 세워 한국영화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파독 광부 출신 고 김태우 사장(1941-2013)의 생전 증언이다. 즉 3년간의 독일 광부 생활을 통해 ‘오직 근면과 노력으로 세상은 이뤄진다’는 ‘독일 정신’을 깨닫고 귀국했기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일굴 수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1941년 전북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에서 태어난 김태우는 고려대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4년 1차2진 파독 광부로 독일로 떠났다. 그는 파독 광부를 암울한 현실의 탈출구로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었느냐. 나는 며칠 있으면 독일에 간다.”

     

    찬바람이 불던 1963년 12월 어느 날. 김태우는 경기 파주시 30사단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난 고려대 공대 친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친구는 얼마 후 파독광부 1차1진으로 독일로 떠났다. 고려대 경제학과 60학번이던 그도 이때부터 무심코 지나쳤던 파독광부를 암울한 현실의 탈출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1964년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칠 즈음 파독광부 모집공고가 났다. 김태우도 지원하고 싶었다. 문제는 광부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강원도 삼척의 한 석탄회사에 입사해 돈을 줘가며 ‘광부 수업’을 받았다. 당시 파독광부 선발 경쟁률은 대략 30대 1정도로, 웬만한 대학의 입시 경쟁률보다 셌다. 그는 “시험에서 떨어지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김태우는 1964년 10월 파독광부로 선발됐고 서울 우이동의 크리스천아카데미(Christian Academy)와 장성탄광에서 2주씩 교육을 받은 뒤 그해 12월23일 독일로 떠났다. 대학 3학년이던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 20여 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독일의 쾰른-본공항에 도착한 그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뒤스부르크의 함본광산 제5샤크트에 배속돼 3년간 청춘을 불살랐다.

     

    김태우는 독일 현지 교육을 마친 후 채탄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호벨이 톱니처럼 돌아가며 석탄을 긁어내는 사이 그는 빈 공간에 60㎏짜리 쇠동발을 세우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다. 언어 소통도, 일도 어려웠다고 그는 회고했다.

     

    “독일 막장은 수직갱으로 지하 1000m까지 파고 들어갔다. 온도는 최소 30도에서 최고 38도까지 이른다. 물 2, 3통을 마시고 장화 속에 땀이 질퍽해져 양말을 7, 8차례 짜야 하루가 끝났다.”

     

    김태우는 독일 탄광회사의 시청각교육 도중 봤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영화 촬영 기술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철(鐵)은 살아있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석탄을 연료로 때서 철을 녹이고 이를 가지고 철골 건물을 짓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는 순식간에 영화에 빠져들었고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한수, 2013.1.16, A8면 참조).

     

    김태우는 광부 생활이 끝나갈 즈음 뮌헨에 소재한 카메라회사 아놀드 니키타의 영화촬영용 35mm카메라 ‘아리플렉스(Arriflex)’ 한 대를 구입했다. 이 카메라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했던 ‘역촬(逆撮)’이 가능한 제품이었다. 즉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어 거꾸로 돌리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첨단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이한수, 2013.1.16, A8면 참조).

     

    “(3년간의) 광부 생활이 거의 끝날 무렵, 아내(남민자·작고)가 ‘독일 촬영기기가 매우 뛰어나니 국내로 가져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더라. 촬영 기사인 아내의 형부가 그런 얘기를 해준 모양이었다.”

     

    김태우는 독일에서 3년간 저축한 돈 2만 마르크에 한국 집에서 보낸 돈까지 더해 카메라를 샀다. 금액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여러 채의 집을 살 수 정도의 액수였다. 그는 카메라 회사 측의 배려로 6개월 과정의 영화 촬영기술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광부 생활이 끝난 이후 6개월간 카메라회사 기숙사에서 먹고자며 촬영기술을 배웠다.

     

    최첨단 카메라에 촬영기술까지 익힌 김태우는 1968년 4월5일 귀국한 이후 장일호 감독이 제작하는 「황혼의 브루스」 촬영을 맡으며 충무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그의 최신 카메라도 국내 영화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영화촬영 현장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신영필름을 세웠다.

     

    김태우는 1973년 산림청의 산림녹화 정책을 홍보하는 「산을 푸르게」라는 2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시작으로 수십 편의 정책홍보 영화를 찍었다. 첫 정책홍보 영화인 「산을 푸르게」에는 서울 우이동의 숲 속에서 송충이가 솔잎을 차례차례 갉아먹는 장면이 포함됐다. 산림청 사람들은 당시 이 화면을 보고 “당신 정말 최고다”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특히 1993년 대전엑스포를 겨냥해 제작한 홍보영화는 잊을 수 없다고 김태우는 회고했다. 그는 ‘열사(熱砂)의 땅’ 리비아와 극한의 남극까지 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70mm 영화를 찍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2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달리는 한국인」이었다. 당시 암을 앓았던 그의 아내는 “당신의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김태우와 신영필름은 이후 영화 관련 매체가 늘자 1997년 산불예방 홍보영화를 끝으로 정책홍보영화 촬영을 그만두고 1998년부터 「쉬리」(1999년 상영)를 시작으로 상업영화의 촬영기기 대여와 촬영 서비스로 전환했다. 이후 「공동경비구역JSA」(2000)와 「공공의 적」(2002년), 「말죽거리 잔혹사」(2004년), 「왕의 남자」(2005),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최종병기 활」(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등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해왔다.

     

    김태우는 2006년 9월 고려대에 재입학해 2008년 68세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구열’을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 입학한지 무려 48년만이었다. 그는 ‘밀린 마지막 숙제’를 다한 느낌이었다고 증언했다.

     

    “대학 재학(3학년) 도중 파독광부로 떠나면서 공부를 그만둬야 했다. 이후에는 사업에 바빠 시간이 없었고, 다시 시작할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2006년 ‘이때가 아니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입학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재입학이 안 되는 규정도 사라져 재입학할 수 있었다.”

     

    김태우는 ‘한국파독광부총연합회’와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등을 주도적으로 결성하고 『파독광부 백서』(2009)를 발간하는 등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들의 삶을 기리는 일에 힘을 쏟았다.

     

    특히 작고하기 직전 정부 지원 등을 받아 서울 양재동의 건물을 매입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파독 근로자 기념관’을 준비했다. 전시관 안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기념 전시실과 교육장, 고국을 방문한 파독 광부 등이 묵을 수 있는 숙소도 갖추도록 했다. 기념관은 2013년 5월21일 개관했다.

     

    김태우는 2012년 12월 뇌출혈로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치료를 받다가 ‘파독 근로자 기념관’의 개관을 미쳐 보지 못하고 2013년 4월1일 작고했다. 사인은 ‘폐섬유화증’ 악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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