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7-2화)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왔다”
  • 운영자
    조회 수: 126, 2015.08.29 22:52:34
  • 200408rirUntitled-24.jpg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안도현, 「가난하다는 것」에서

     

    과정과 절차의 차이뿐 아니라 1차와 2차 파독광부 사이에는 본질(本質)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차 파독 광부들은 지원 동기와 출신 등에서 1차 파독 광부보다 서민(庶民)적, 민중(民衆)적 성격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먼저 동기(動機)에서는 제3국 이민이나 유학, 시대적 절망 등의 이유보다 빈곤(貧困)문제 해결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게 파독 광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 같은 경향은 광부 파독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2차 파독 광부인 김일선의 증언이다.

     

    “직업은 특별한 것이 없었고, 가족이 많아 생계조차 제대로 꾸려가기 힘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독일에 왔다. 일부 독일에 가 공부를 하겠다거나 또는 다른 세계를 보면서 돈도 조금 벌어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거의 태반이 생계 때문에 왔다고 보는 게 맞다.”

     

    물론 박정희 체제가 강화되면서 시대에 대한 절망(絶望)으로 파독을 지원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전(自傳)적인 소설 『나는 독일의 파독광부였다』를 쓴 원병호가 그런 경우이다.

     

    출신(出身)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실제 조사에서 2차 파독 광부의 구성은 강원과 전남 등 경제개발이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던 지역 출신과 30대 이상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차에 비해 민중적 성격이 강화된 것으로 해석되는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출신 지역은 강원도 출신이 50.2%로 가장 많았다. 전남(16.8%)과 충남(13.7%), 경남(10.5%), 서울(5.4%) 출신자가 그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25-34세가 전체의 91.9%(30-34세 55.2%, 25-29세 36.3%)를 차지했다. 지원자의 평균 신장은 168.4±4.74cm, 평균체중은 61.3±5.65kg이었다(최삼섭, 1974, 5-7쪽 참조).

     

    특히 1차 파독 광부가 상대적으로 대졸 출신자가 많았다면 2차에선 베트남전 참전군인(參戰軍人) 출신이 많았다. 민중적 성격이 강화된 것으로 해석되는 근거의 하나이다. 장재인의 설명이다.

     

    “1차 파독광부는 주로 먹고 사는 것보다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 경제 상황으로는 해외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광부 파독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니까 광부로 독일에 온 것이다. 하지만 1970년부터 1976년까지 온 사람들은 월남전 세대(世代)로, 자기 삶을 다른 방향에서 개척하려는 세대였다. 월남이라는 곳에서 이미 ‘외국 물’도 먹어봤고, 사고도 개방적이었다. 자신의 꿈을 펼 수 있는 곳으로 가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컸다. 1977년 마지막 부류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부류가 많았다.”

     

    1970년대 파독 간호요원도 1960년대에 비해 차이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30대와 중학교 졸업자, 호남 출신이 늘어난 것이다. 파견 간호사 또한 서민성, 민중성이 강화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주독 한국대사관 등에 의하면, 1973년 12월31일 기준으로 독일에 체류 중인 간호요원 6124명 가운데 21-30세가 74.7%로 가장 많았다. 30대 이상(15.9%), 20세 이하(9.45%)가 그 뒤를 이었다. 30대 이상이 20세 이하보다 크게 못미쳤던 1966년과 달리 30대 이상의 간호요원이 20세 이하보다 많아졌다. 학력에서는 고졸이 4023명으로 65.7%를 차지, 여전히 가장 비중이 높았다. 중졸(18.9%), 초대졸 혹은 중퇴(11.8%), 대졸(3.5%) 순이었다. 1666년에는 중졸의 비중이 초대졸이나 대졸에 크게 뒤쳐졌지만, 이때에는 중졸 비중이 대졸이나 초대졸 비중을 크게 상회했다. 출신지에선 전남이 1307명으로 21.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816명, 13.3%), 경북(810, 13.2%), 전북(798, 13.0%), 충남(605, 9.9%) 등의 순이었다. 호남(湖南) 출신이 가장 많아 전체의 34.3%를 차지한 반면 서울의 비중은 크게 줄었다. 1966년 서울출신 비중이 53%를 차지하던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호남 출신이 많은 이유는 호남 지역의 경제적 상황이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열악한데다가 호남 지역에서 많은 간호요원이 배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정해본, 1988, 145-146쪽 참조).

     

    “호남 출신의 간호요원이 크게 증가한 것은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서 간호요원이 많이 배출됐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즉 여러 종교계통의 간호학교가 일찍부터 설립돼, 빈농(貧農) 출신의 여성들이 생업을 위해 간호사나 조산원(助産員) 등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정규 간호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간호능력을 갖추고 있었다.”(정해본, 1988, 146쪽)

     

댓글 0 ...

위지윅 사용
번호
제목
닉네임
58 운영자 394 2015.09.05
57 운영자 77 2015.08.30
56 운영자 994 2015.08.30
55 운영자 220 2015.08.30
54 운영자 722 2015.08.30
53 운영자 193 2015.08.30
52 운영자 146 2015.08.30
51 운영자 171 2015.08.30
50 운영자 263 2015.08.30
49 운영자 215 2015.08.30
48 운영자 592 2015.08.30
47 운영자 105 2015.08.29
운영자 126 2015.08.29
45 운영자 322 2015.08.29
44 운영자 198 2015.08.15
43 운영자 252 2015.08.15
42 운영자 252 2015.08.15
41 운영자 757 2015.08.15
40 운영자 257 2015.08.14
39 운영자 354 2015.08.14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