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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7-6화) 여행, 광부와 간호사의 다리가 되어
  • 운영자
    조회 수: 263, 2015.08.30 0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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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물러 있으면 세상은 꿈처럼 달아나고

    여행을 하면 운명이 장소를 정해준다.

    더위도 추위도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일.

    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곧 시들고 말리라.

    -괴테, 「체랄-에딘 루미는 말한다」에서

     

    파독 광부들이 독일 사회에 정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듯이, 체류 연장이 허용된 파독 간호사와의 결합(結合)이었다. 체류 연장이 쉽지 않았던 광산 노동자들은 체류 연장이 자유로웠던 간호사와 결합, ‘가족 동거권(家族同居權)’을 인정받아 독일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간호사와의 결합은 또한 동포 사회를 독일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광산 노동자들은 파독 간호사와 결합하기 전엔 주로 루르 공업지대의 중심지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몰려있었다. 하지만 독일 전역에 산재해 있던 간호사들과 가정을 꾸리면서 자연스럽게 독일 각지로 확산됐다. 1995년 함부르크와 베를린 한국 동포사회를 분석한 이광규의 분석이다.

     

    “베를린과 함부르크의 유사한 점은 두 도시 모두 간호사가 먼저 이주하고 이어서 광산노동자가 모여든 점이다. 말하자면 서부 독일 광산지대 이외 도시에는 간호사가 먼저 정착하고 이들과 결혼한 광산노동자가 정착을 한 것이다.”(이광규, 1996, 99쪽)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인연을 맺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여행(旅行)이었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생활하던 그들은 여행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맞춰갔던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파독 광부 출신 김문규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많은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를 부부로 맺어줬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을 통해 부부로 맺어준 경우가 수십 건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1940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김문규는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중학교와 전주 영생고 시절엔 각각 1차례씩 무전(無錢)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1958년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에는 전남 곡성, 여수, 목포, 광주 등 호남지역을, 1959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에는 진주, 함안, 부산, 마산, 대구, 울산, 포항, 안동, 속초 등 영남지역을 여행했다. 교통편은 주로 열차를 이용했다. 화물칸 등을 공짜로 타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풀밭이 잘 조성된 공동묘지나 절 등에서 잠을 잤다. 감자도 캐먹고 옥수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나중에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마을 이장 집에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에게 여행은 견문과 지식을 넓혀주는 ‘산교육의 시간’이었다. 시골 사람이나 승려와 잠을 자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견문을 넓혔다. 특히 1961년 고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여행가 김찬삼(金燦三·1926-2003)과의 만남은 그에게 ‘세계 일주’라는 꿈을 심어줬다. ‘세계의 나그네’라 불린 김찬삼은 인천고 지리 교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지리학 교수가 된 인물로, 그가 들려준 경험담과 교훈은 김문규에게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학회 참석차 유럽에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무전여행을 다녔지. 돈이 떨어지면 아무 공장이나 찾아갔어. 처음 1주일 정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성실히 일해 신용이 생기면 잘 봐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돈을 모으고 어느 정도 모이면 다시 여행을 떠나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하고. 외국에서 돈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계속 용돈을 벌면서 3년간 여행을 했어. 그래서 성실해야 한다. 요령 부리고 거짓말하면 다 보인다. 그것이 지혜다.”

     

    김찬삼은 그러면서 그에게 “외국어를 조금 할 수 있어야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용기(勇氣)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찬삼과의 만남과 조언은 그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김문규가 독일에 온 것은 1970년 7월24일. 대구에서 한 신문지국을 운영하다가 파독 광부를 모집한다는 기자의 얘기를 듣고 독일에 오게 됐다. 2차3진으로 동료 70명과 함께 겔젠키르헨 광산에서 일했다. 기계로 동발을 세우는 ‘아이젠스템펠’이 주 업무였다. 터키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기계를 더 잘 다루자 기계를 맡긴 것이다. 비록 힘들었지만, 이때 얻은 경험과 자신감은 이후 여행사업의 소중한 밑바탕이 됐다. 김문규의 고백이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인생을 배우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내야 하고, 자기 생활에 충실해야만 독일 법에 따라 남을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다음 길이 있다는 점 등을 배웠다. 특히 어려운 일도 해냈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하는 자신감도 얻었다.”

     

    김문규는 파독 광부 시절이던 1971년부터 동료 임종권과 이양구(작고) 등과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할수록 젊은 시절의 꿈이 되살아났다. 그럴수록 여행 횟수는 늘어갔다. 광부 시절에 유럽을 두 바퀴 돌았다. 자주 여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동료들은 ‘여행물새(번 돈을 여행으로 다 써버리는 부류)’라고 놀리기도 했다. 1971년 파독한 뒤 슈투트가르트 적십자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아내(1951년, 충남 홍성 출신)와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1973년까지 광산에서 일한 그는 1974년 4월 여행업을 시작했다. 키센에서 시작한 뒤 이듬해 프랑크푸르트로 이사 왔다. 주중에는 병원일을 하고 주말을 활용해 여행을 하는 방식이었다. 5년간 봄과 가을 휴가를 이용, 1년에 두차례씩 광부와 간호사 등 한국동포를 모아 단체여행을 다닌 뒤 1980년 정식으로 여행사를 차렸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약속 문화(約束文化)’에 익숙하지 않던 시대적 한계 때문에 제휴를 맺고 있던 K, S여행사 등 한국 여행사가 자주 스케줄 펑크를 냈다. 50명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10명으로 줄여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약을 책임졌던 그는 호텔 등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여러 차례 곤혹스런 상황에 내몰렸다. 결국 그는 5만 달러를 손해본 뒤 1985년 이후 독자적인 여행업을 시작했다.

     

    김문규는 특유의 성실함과 교민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여행업을 꾸려왔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엔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가 조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찾아와 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2006년 현재 프랑크푸르트 인근 오버하우젠에 살면서 스스로 전화와 이메일, 팩스 등으로 예약을 받고 스케줄을 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5일, 1주일, 10일, 12일짜리 ‘코치투어(Coach Tour·버스여행)’ 관광 상품을 개발해 연간 700-1000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연 매출액은 60-70만 유로(한화 약 9-10억원) 수준. 물론 광고비와 직원 인건비 등 지출도 많아 온 가족이 함께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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