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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7-7화) 한글학교에서 배우는 한국 정신
  • 운영자
    조회 수: 171, 2015.08.30 00: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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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결합하면서 재독 동포사회(同胞社會)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가정이 꾸려지면서 2, 3세대가 형성됐고, 이들의 교육을 위해 ‘주말 한글학교’도 세워지기 시작했다. 주말 한글학교는 동포 사회를 탄탄하게 묶어주는 매개체(媒介體)가 됐다. 동포 2, 3세에게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수하는 통로가 됐다. 한글학교는 동포 사회의 문화와 정신의 재생산(再生産) 구조를 제공하면서 한국인들이 독일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재독 한국동포 사회에서 첫 한글학교가 세워진 것은 1973년 4월. 서독 쾰른에서 주말 한국인학교가 세워졌다. 이후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들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1977년 7곳, 1985년 33곳, 1995년 38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광부 및 간호사 파독이 중단된 뒤 교포 사회가 위축되면서 한글학교도 줄기 시작해 2002년 현재 36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상경의 설명에 따르면, 주말 한글학교는 학교건물이나 공공건물, 교회, 개인주택 등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열린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와 역사 등을 2-4시간 정도 가르친다. 교과서는 주로 한국 정규학교의 국정교과서. 학교에 따라서는 독자적으로 교과서를 편집해 사용하는 곳도 있다. 교사는 주로 유학생이나 유학생 부인들이 담당한다. 특히 정교사 자격을 받아 교사 경험이 있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학교 운영경비는 대부분 학생들의 수업료와 서독 정부의 지원금, 이사회와 육성회의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때로는 현지 공공기관이나 종교단체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을 때도 있다(이상경, 1992, 866-868쪽 참조).

     

    주말 한글학교는 독일에서 동포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이 됐다. 동포 2, 3세에게는 한국어와 한국노래를 가르치고 국사 등 역사교육까지 병행,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심어줬다. 특히 자녀 교육뿐만 아니라 이를 매개로 동포 사회의 조직을 다져줘 한국인이 세계와 교류하도록 도움을 줬다. ‘재독 한국여성모임’의 회원으로 하이델베르크 한글학교 교장을 6년째 맡았던 강여규의 얘기다.

     

    “대체로 외국에서 한국어 교육은 각 지역에 사는 한인과 그 자녀들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며 유지하는 하나의 길이다. 한국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세계화란 말을 세계시장의 점령이란 투쟁적 의미가 아니라, 네 것과 내 것을 함께 인정하는 공존으로 이해한다면, 외국에 사는 한국인은 그 거주지 문화의 일원이 되면서 동시에 우리 것을 전파하는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강여규, 2002.10.28, 22면)

     

    독일 가정에 입양된 한국인이나 한·독 가정의 2세에게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즉, 한국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한국계 독일인에게도 정신문화적 교육공간이 됐다. 사례 가운데 하나다.

     

    “몇 년 전 독일인 두 부부가 각각 딸과 아들을 데리고 한글학교를 찾아왔다. 두 부부는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해 길렀다며 한글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늦게나마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찾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미 열여섯, 열일곱의 청소년이었다. 2년 정도 한글학교를 다녔고, 한국을 방문해 친부모를 찾아보려고 노력도 했다.”(강여규, 2002.10.28, 22면)

     

    물론 주말 한글학교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교육을 받으려는 2, 3세가 줄어드는 데다 운영경비를 비롯한 재정상황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탓이다.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역 축제 등에 참여하기도 한다. 강여규의 계속된 설명이다.

     

    “우리 한글학교는 학부모가 내는 소액의 수업료로 유지가 될 수 없어,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하이델베르크 시에서 열리는 거리축제나 외국인 축제에 참가해 한국음식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 행사에는 학부모와 교사가 모두 참가하게 된다. 하루 종일 서서 음식을 팔다보면 온 몸이 뻣뻣해질 정도로 힘이 든다. 그러나 수익이 적지 않고, 김밥 잡채 튀김 김치 등 한국 음식을 알리고 한글학교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는 연중행사가 됐다.”(강여규, 2002.10.28, 22면)

     

    한편 한국 동포사회가 정착하면서 주한미군과 결혼했다가 독일로 이주하게 된 한국인 여성들도 동포 사회와 연결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미군이 한국 경기도 파주나 동두천 등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만났다가 미군이 독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함께 이주해온 경우였다. 주로 미군부대가 배치돼 있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만하임(Mannheim) 지역 등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게 동포들의 증언이다. 뮌헨에 살고 있는 송준근의 기억이다.

     

    “1980년대 초반 만하임에 정착하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미군과 함께 사는 한국 여성들이 많아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경기도 파주나 동두천 등에서 주둔하던 미군과 결혼, 이곳으로 온 경우였다.”

     

    정부 통계와 파독 광부의 증언 등에 따르면, 2003년 현재 독일 동포 사회는 독일 시민권자(6933명)와 영주권자(9740명)가 유학생(5569명)과 일반 체류자(7572명)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영국의 동포 사회가 시민권자(266명)와 영주권자(3234명)가 일반 체류자(1만2500명)와 유학생(1만9000명)에 비해 훨씬 적은 것과는 대비된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중심으로 독일 사회에서 안정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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