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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7-8화) 함박눈과 함께 저문 광부 파독
  • 운영자
    조회 수: 146, 2015.08.30 00: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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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독 광부를 선발하려니까 사방에서 압력이 들어와 도저히 힘들어 못하겠다. 직접 한국으로 들어와 광부를 선발해 줄 수는 없겠느냐.”

     

    1975년 가을. 서독 루르광산회사의 사무실에서 파독 광부들의 통역 조립은 한국에서 걸려온 국제전화 한 통을 받고 답답함을 느꼈다. 1963년 12월 1차1진으로서 파독한 조립은 1973년부터 광산회사 전체 통역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서영수 당시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이었다. 서 사장이 조립에게 파독 광부 선발을 의뢰한 것이다. 그만큼 광부 파독을 둘러싸고 잡음(雜音)과 혼란(混亂)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요청이었다.

     

    2차 광부 파독이 마지막을 향해 치달을수록 선발과 교육과정의 혼선은 심해졌다. 상당수가 브로커 등을 이용, 노동청이나 해외개발공사에 대한 로비를 시도했다. 원병호의 묘사는 당시 청탁과 로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날 어머님과 약속한대로 아는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삼일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분노가 인다. 남의 나라 광부로 가는 것에도 돈을 써야 하다니. 한편으로는 만약에 그분이 안 도와주면 서독행은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다. 한참 기다려서야 그 사람을 알아본 어머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한다. 고민주도 얼떨결에 따라 일어나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고민주입니다.’

    ‘아, 앉게. 어머님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사실 우습지만 현실이네. 너무 많은 응모자 때문에 공정하게 합격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게 해외개발공사 측의 이야기지. 아무래도 한두 번 만나서 술 한 잔과 식사는 있어야 하기에 미안하게 되었군. 절대로 나는 돈 한푼 먹지 않네. 그러니 뽑히면 가서 일이나 열심히 해 돈을 많이 벌어오게. 아무래도 광산 일이 좀 어려울 걸세.’

    ‘아, 그러시겠지요. 외국에 간다니 어중이떠중이 모두 모이겠지요. 그런데다 돈 있고 살만한 자까지 응모를 했다고 하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꼭 부탁합니다.’

    주위를 살피던 어머님은 잽싸게 준비해 온 누런 봉투를 그에게 건넨다. 다방이라 남을 의식한 그는 재빨리 봉투를 받아 안주머니에 넣는다.”(원병호, 2004, 111쪽)

     

    1976년 1월. 조립은 서영수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의 요청에 따라 윌리 더 하르트 루르광산회사 인사기획실장과 함께 서울에 왔다. 쏟아지는 청탁과 외압, 로비를 뿌리치기 위해 광부로 떠난 그가 12년 만에 파독 광부 선발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독일 광산회사 측은 광산노동 경력을 우선 체크하는 등 ‘노동 생산성’에 선발 포인트를 맞춘 반면 조립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노동 안정성’에 초점을 맞췄다. 존재(存在)의 차이가 빚어낸 관점(觀點)의 차이였다. 조립의 얘기다.

     

    “독일 광산회사는 광산노동에 대해 아는 사람을 선발하려고 했다. 나의 입장에서는 돈도 없고 연줄도 없고 어디서 힘을 빌리기도 어려운 사람을 뽑으려 했다. 왜냐하면 어렵게 살아온 사람이라야 힘든 광산일과 독일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문경이나 삼척, 장성 등에서 온 사람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응시인원은 8000여명. 체격·체력검사와 면접시험, 현장교육 등을 거쳐 1976-77년 독일 땅을 밟은 사람(2차36진-2차47진)은 정용기 등을 포함한 1009명. 조립은 바로 이들 1000여명을 선발했던 것이다.

     

    잊지 못할 사연도 적지 않았다. 조립은 파독광부 선발을 끝난 뒤 윌리 더 하르트와 함께 장성광업소를 방문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 강원도 태백시 황지에서 기차를 이용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기차 속에서 한국해외개발공사 직원 여덕주가 조립에게 다가왔다. 안타까운 사연 하나를 소개했다. 전남 진도에 사는 L이 할머니 장례 때문에 파독광부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립은 안타까웠다. 조립은 윌리 더 하르트에게 L의 사연을 소개했다. 윌리 더 하르트는 여덕주에게 L에 대한 별도의 선발시험이 가능한 지를 물었다.

     

    “혹시 빠른 시일 내에 신체·체력검사 등을 모두 치를 수 있겠습니까? 한국해외개발공사 이사, 선발관 등 관계자에게도 양해를 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앞으로 다가오며) 선발관만 좋다고 한다면 모든 절차를 다 신속히 처리할 수 있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시험볼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합시다.”

     

    L은 결국 파독 광부로 선발됐다. 레클링하우젠 광산에서 일한 뒤 현재 독일에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조립은 나중에야 L의 사연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파독 광부 선발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을 즈음, 기차 밖에는 무정하게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선발된 파독 광부들은 1976년 3월3일부터 차례로 독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1977년 10월25일 정용기 등 2차47진이 김포공항을 떠났을 때 그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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