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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7-9화) 간호사 강제귀국 반대운동
  • 운영자
    조회 수: 193, 2015.08.30 0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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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재독 동포사회, 특히 파독 광부 및 간호사 사회에 위기가 닥쳐왔다. 독일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한국인 광부 파독이 중단(中斷)됐다. 파독 간호사에 대한 집단해고와 강제귀환 조치도 잇따라 취해졌다.

     

    위기는 1973년 10월6일 발발한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제1차 오일쇼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OPEC(석유수출국기구) 소속의 6개 원유생산국은 10월16일 원유 가격을 17% 인상하고 이스라엘이 아랍 점령지역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원유생산량을 매월 5%씩 감산하기로 한 것이다. 이듬해 원유 생산국들은 원유가를 다시 인상해 단기간에 4배 가까이 원유 가격이 폭등했다.

     

    1974, 75년 세계 경제와 함께 독일 경제도 크게 악화(惡化)됐다. 물가는 폭등한 반면 실질 소득은 감소했다.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광산회사와 병원 등의 채산성도 급격히 악화하면서 비용 절감이 절실해졌다. 인원감축을 비롯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1차적인 타깃은 역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독일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노동자를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라는 정책을 고수했다. 이 정책은 ‘외국인 노동자(Fremdarbeiter)’라는 말 대신 ‘손님 노동자(Gastarbeiter)’라는 용어가 잘 설명한다. 즉 ‘외국인 머슴’이 아니라 ‘손님 같은 일꾼’이라는 호의적인 표현이었지만, 이면엔 ‘손님인 만큼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으면 반드시 당신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40여년이 지난 오늘, 젊던 일꾼들은 이제 고령의 이주민이 됐다. 그들, ‘독일 산업전선의 노병들’이 없었더라면 ‘라인강의 기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독일 사회는 ‘노동자를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라는 정책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조국남, 2002.9.16, 22면)

     

    독일 경제 침체는 결과적으로 파독 광부의 중단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실업률이 늘어나면서 서독 여성들이 병의원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독 간호사들도 위기를 맞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나둘씩 병원을 떠나야 했다. 심지어 뮌헨의 일부 병원에서는 한국의 간호인력 10여명이 집단으로 해고되기도 했다.

     

    위기는 1974년 2월부터 파독 간호사의 ‘사치(奢侈) 문제’가 불거지면서 어느 정도 예고된 상태였다. 이때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독일 사회의 압박이 가중되던 때였다. 1974년 2월21일. 주한 서독대사관 좀머(Sommer) 문정관이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파독 한국인 간호사가 사치스럽고 낭비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좀머 민정관 편지의 주요 내용이다.

     

    “서독 간호요원의 개인 생활이 무분별한 여행 등 사치와 외화낭비적인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외화획득 정책에 차질을 초려할 우려도 없지 않다. 간호사 파독 10년이 넘었는데도 이들을 위한 정부 당국의 관리기구나 대책이 미흡하다.”

     

    서독 언론도 한국인 파독 간호사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뮌헨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uddeutsche Zeitung․남부독일신문)』은 그해 5월17일자 기사에서 서베를린시 관리가 한국 간호사에게 취업허가 및 체재 기간의 연장을 미끼로 성범죄를 저질러 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간호사의 사치 문제가 여론화되자 1974년 6월14일 노동청에서 ‘관계관 회의’를 열었다. 여성 노무관제 신설과 파독 전 교육 강화 등이 논의됐다.

     

    물론 국내에서도 간호사 파독에 대한 비판론(批判論)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력수출(人力輸出)’에 급급하지 말고 신분 보장과 보수 등에서 권익을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1974년 대한간호협회 전산초 회장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인력 수출’을 목적으로 한 간호보조원 제도나 교육방법을 재검토해야 하고, 특히 외국과의 계약 관계나 근로조건에 있어서 인력수출에만 급급한 나머지 저자세를 취할 게 아니라 신분보장면과 보수면에서 한국 간호원의 권익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입장이어야 하는 것이다…해외 파견 간호원의 문제는 단순히 인력수출이라는 경제적 차원보다 그네들이 심는 이미지 여하에 따라 한국 전체에 대한 인식이 좌우될 수 있고 나아가선 국가간의 유대마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간외교 사절을 파견하는 경우와 같은 높은 차원에서 치밀한 계획과 훈련을 시켜야 한다.”(전산초, 1974.6.15, 5면)

     

    파독 간호사들은 1977년 고조된 서독 병원들의 퇴출(退出) 움직임에 굴하지 않고 맞섰다. 그해 5월부터 서독 병원당국의 집단해고 및 강제추방 조치에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서명운동과 가두시위, 입법청원 등 동원가능한 모든 합법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1977년 12월 독일인과 한국 동포를 대상으로 1만1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서독 의회와 정부에 간호사의 집단해고와 강제추방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서명의 주요 내용은 △우리는 독일의 병원이 간호사가 필요로 해 이곳에 왔으며 당신들을 도와줬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겠다 △5년 이상 종사자는 무기한 노동허가를, 8년 이상 종사자는 무기한 체류허가를 보장하라 등이었다.

     

    특히 1978년 3월 가톨릭단체인 ‘카리타스(Caritas)’의 후원으로 한국 동포와 독일인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파독 간호사의 강제귀환 조치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후 내무성과 노동청, 독일병원협회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파독 간호사의 투쟁은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독일 언론이 파독 간호사의 투쟁에 대해 호의적인 보도를 내보내면서 여론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결국 서독 당국은 강제 귀환(强制歸還) 조치를 철회했다. 파독 간호사들은 승리했고,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파독 간호사들은 이 같은 투쟁을 거치면서 스스로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실과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할 때만이 해결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는 1978년 9월 ‘재독한국여성모임’ 결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하나가 돼 벌인 대응은 강제귀환 조치의 철회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열매를 낳았다. ‘우리가 우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뛰어들 때만 해결이 된다’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공동 투쟁의 와중에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던 한국 간호사와 유학생들의 긴밀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공동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 어떻게 해 여기에 있게 되었는가?’ 이런 생각은 조국에 대한 염려로 이어졌다. 1978년 ‘재독한국여성모임’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재독 한국여성모임은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다.”(최영숙, 2002.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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