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7-11화) 베를린장벽 붕괴에서 통일을 읽다
  • 운영자
    조회 수: 220, 2015.08.30 07:36:16
  • 베를린장벽붕괴-kbs캡쳐.jpg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 붕괴 현장-KBS 그때뉴스 캡쳐>

     

    “1989년은 동서독 (베를린) 장벽(障壁)이 무너지는 감격적인 해였지요. 베를린에 살면서 그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어요. 많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우리도 빨리 통일이 될 수 있기를 염원했죠.”(한정로, 2002.12.23, 22면)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역사적인 독일 통일(統一)을 현장에서 경험한 파독 간호사 출신의 한정로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러면서 베를린장벽 붕괴로 비로소 한반도 통일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을 이었다.

     

    “동서독의 통일은 갑자기 우리에게도 남과 북의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했죠. 통일에 대한 관심을 확대한 중요한 역사적 경험이었어요.”(한정로, 2002.12.23, 22면)

     

    한정로의 지적처럼, 독일 통일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마지막 분단국인 우리에게도 통일의 가능성을 웅변하는 동시에 통일을 향해 실천하게 만든 대(大)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동서독을 가른 분단의 장벽, ‘베를린 장벽’. 우리에게 38도선이 있다면, 독일에게는 베를린장벽이 있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패했다. 미국과 소련 등 연합국에 의해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베를린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눠졌다. 1950년 중반 베를린 장벽화가 선언된 뒤 1961년 장벽이 세워졌다. 독일은 오랜 시간 분단돼 고통을 겪었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동서독간 경제력 등의 격차가 심해졌고, 구소련의 몰락으로 지지력을 잃은 동독이 붕괴되면서 서독에 흡수 통일된 것이다. 서독은 이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 등으로부터 통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받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국제관계를 조정 관리했다. 비록 통일된 독일은 적지 않은 ‘통일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무력충돌이 없는 평화적인 통일을 이뤘다는 점에서 많은 교훈을 남겼다.

     

    만약 남한과 북한이 언젠가 통일을 한다면, 독일은 꼭 기억돼야 할 나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독일의 의미는 단순히 분단국가라는 공통성으로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남북 간 직접 왕래가 적지 않고 가까운 중국을 경유해 방북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이 개혁개방하기 이전에는 독일이 많은 통일운동가의 방북 루트가 됐다. 1989년 북한을 다녀온 소설가 황석영은 이후 독일에서 오랜 기간 체류한 뒤 1993년 귀국, 구속됐다. 전대협 대표로서 1989년 북한 평양축전에 참여했던 임수경도 1989년 6월20일 출국해 독일을 경유, 평양에 도착하기도 했다.

     

    재독동포들도 조국의 통일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1980년 후반과 1990년대 초반 거세게 불었던 통일운동에 대한 지지와 통일운동가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1989년의 일이다.

     

    “이튿날(1989년 11월10일) 여성모임 회원들은 북과 장구, 꽹과리를 치면서 ‘조국은 하나다(Korea is one)’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손을 들어 크게 외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붙잡고 ‘독일이 다시 통일됐으니, 너희 나라도 멀지 않아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나는 바로 그때 친구들과 함께 금단의 나라, 북한을 방문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계신 문익환 목사님과 임수경 학생의 석방을 위해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통일의 기쁨으로 가득찬 독일 사람들은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면, 벌써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기꺼이 서명을 해줬다. 이날 약 4000여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무력을 쓰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고 이루어진 독일의 평화통일을 피부로 느끼면서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참담한 비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하나의 핏줄로 이어온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조국의 분단과 민족분열의 비극을 겪게 된지도 어언 반세기, 이제 민족대단결로 분단과 대결의 역사를 끝장내야 할 시기가 아닌가?”(김진향, 2002.3.25, 10면)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사회는 1980년 광주의 진실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두 가지 대사건을 통해 조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켰다.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문익환,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

     

댓글 0 ...

위지윅 사용
번호
제목
닉네임
58 운영자 394 2015.09.05
57 운영자 77 2015.08.30
56 운영자 994 2015.08.30
운영자 220 2015.08.30
54 운영자 722 2015.08.30
53 운영자 193 2015.08.30
52 운영자 146 2015.08.30
51 운영자 171 2015.08.30
50 운영자 263 2015.08.30
49 운영자 215 2015.08.30
48 운영자 592 2015.08.30
47 운영자 105 2015.08.29
46 운영자 126 2015.08.29
45 운영자 322 2015.08.29
44 운영자 198 2015.08.15
43 운영자 252 2015.08.15
42 운영자 252 2015.08.15
41 운영자 757 2015.08.15
40 운영자 257 2015.08.14
39 운영자 354 2015.08.14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