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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8-1화) ‘한강의 기적’ 씨앗이 된 광부 간호사의 송금
  • 운영자
    조회 수: 994, 2015.08.30 22:33:35
  • 한강의기적-kbs뉴스.jpg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서울의 야경-KBS뉴스 캡쳐>

     

    “그 사람들 때문에 서독에서 차관이 들어와 경기에 기름기가 돌기 시작했고, 거기다가 광부들이 계속 가면서 송금하는 게 본격화되니까 판이 아주 달라지고 있다 그거지. 그 사람들은 매달 의무적으로 송금을 해야 하고, 그렇게 들어오는 돈은 전부가 다 귀한 딸라(Dollar)란 말야.”(조정래, 2003, 50-51쪽)

     

    조정래의 대하(大河)소설 『한강』(제4권) 가운데 건설업자 박부길이 아들 박준서에게 중요한 경영 노하우를 가르치는 대목이다. 박부길은 여기에서 광부 파독이 갖는 경제적인 의미(意味)를 정확하게 짚는다.

     

    “정부에선 딸라를 쌓으면서 국내 돈을 찍어 가족들에게 전해주는 거니까 나라는 부자가 되고, 국내 소비는 촉진되면서 경기가 좋아지고, 그 사람들 공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거기다가 간호사들까지 서독으로 가기 시작했어. 그럼 더 많은 딸라가 들어오게 될 텐데. 이건 우리한테 더 없이 좋은 기회야. 정신 바짝 차리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런 말이다.”(조정래, 2003, 50-51쪽)

     

    즉 박부길은 광부 파독을 ‘파독 광부의 송금(送金)→정부의 외화 축적과 민간의 소비 촉진→근본적인 경제의 변화’라는 경제성장의 선순환(善循環) 고리의 출발점으로 인식한다. 도대체 파독 광부의 송금이 한국 경제성장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길래 사업가 박부길은 “판이 아주 달라지고 있다”고 했을까.

     

    먼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국내 송금 규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청(1976) 등에 따르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1964년 11만 달러를 시작으로 △1965년 273만 달러 △1966년 477만 달러 △1967년 579만 달러 △1968년 241만 달러 △1969년 124만 달러 △1970년 333만 달러 △1971년 659만 달러 △1972년 831만 달러 △1973년 1416만 달러 △1974년 2447만 달러 △1975년 2768만 달러 등 모두 1억153만 달러를 송금했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9, 213-214쪽 참조).

     

    <표 6> 광부 및 간호사 등 서독 근로자 송금 규모

    출처=노동청, 1976;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9, 214쪽 참조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이 같은 송금액은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규모에서 보면 큰 게 아니겠지만, 당시 경제규모에서 살펴보면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즉 파독 광부 및 간호사의 송금은 당시 우리나라 상품(商品) 수출의 2% 가까운 비중(比重)을 차지했다. 각종 자료 등에 따르면, 1965년 한국의 상품수출 총액은 1억 7500만 달러 수준이었는데, 그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에 송금한 금액이 273만 달러였다. 따라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의 송금은 우리나라 상품수출액의 1.5%를 차지하는 큰 액수였다. 월남파병이 본격화된 1966년의 경우 한국의 상품수출 총액의 2억 5000만 달러였고, 그해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송금액은 477만 달러로, 상품 수출액의 1.9%를 차지했다. 1967년 상품 수출액은 3억 2000만 달러였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송금액은 579만 달러로 상품수출액의 1.8%에 이르렀다. 즉 1965-67년 3년간 파독 광부 및 간호사의 송금액은 당시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거의 2%에 육박(肉薄)하는 규모였다는 얘기다(노동청, 1976;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9, 213쪽 참조).

     

    특히 파독 광부들의 국내 송금은 순수한 외화획득(外貨獲得)이었고, 따라서 원자재와 중간재를 사서 재가공해 파는 당시의 상품 수출보다 실질적인 국제수지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가 컸다는 지적도 있다. 박래영의 지적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해외진출 인력의 송금액과 상품수출액을 직접 비교해 국제수지 효과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해외진출 인력의 송금은 전액 외화획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품수출은 원자재나 중간재를 도입한 경우가 많아 부가가치만이 외화획득으로 되기 때문이다. 만약 순수한 외화획득으로 환산한다면 해외진출 인력의 송금이 이룩한 국제수지 개선효과는 상품수출에 의한 것보다 1.5배 내지 2배로 높게 평가돼야 할 것이다.”(박래영, 1988, 543-544쪽)

     

    아울러 파독 광부 및 간호사의 송금은 당시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外換保有高)의 최대 2.3%까지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등에 따르면, 파독 광부 및 간호사의 송금은 1964년 11만 달러로 그해 우리나라 외환보유고(1억 3640만 달러)의 0.08%를 차지한 이래 △1965년 1.87% △1966년 1.95% △1967년 1.62%를 차지했다. 광부 및 간호사 파독 중단으로 1968년부터 1970년까지 그 비중이 줄었지만 1971년 1.16%(송금액 659만 달러, 외환 보유고 5억 6810만 달러)로 다시 증가한 뒤 △1972년 1.12% △1973년 1.29% △1974년 2.32% △1975년 1.79%를 차지했다.

     

    <표 7> 독일 노동자 송금의 수출 및 외환보유고 대비 비중

     

    연도

    수출액(만 달러)

    외환보유고(만 달러)

    송금액(만 달러)

    송금액/수출액

    송금액/외환보유고

    1964

    11900

    13640

    11

    0.09%

    0.08%

    1965

    17510

    14630

    273

    1.56%

    1.87%

    1966

    25030

    24520

    477

    1.91%

    1.95%

    1967

    32020

    35660

    579

    1.81%

    1.62%

    1968

    45540

    39100

    241

    0.53%

    0.62%

    1969

    62250

    55290

    124

    0.20%

    0.22%

    1970

    83520

    60970

    333

    0.40%

    0.55%

    1971

    106760

    56810

    659

    0.62%

    1.16%

    1972

    162410

    73970

    831

    0.51%

    1.12%

    1973

    322500

    109440

    1416

    0.44%

    1.29%

    1974

    446040

    105570

    2447

    0.55%

    2.32%

    1975

    508100

    155020

    2768

    0.54%

    1.79%

     

    출처=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9, 213쪽 및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데이터

     

    결국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의 송금은 당시 상품수출 규모와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 상당히 유의미한 규모였고 비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송금이 한국 경제성장에 차지하는 기여도(寄與度)는 단순 수치 이상이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한국 경제성장에서 10% 이상 기여했다는 분석조차 있다. 김수용 등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 해외인력 송금의 한국 경제성장에 미친 기여도(불변가격 송금 증가액/GNP 증가액×100)를 분석한 결과 1965년에는 12.2%에 이르고, 1966년에는 11.8%, 1967년에는 무려 15.1%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1960년대 후반 송금을 통해 한국 경제성장에 두 자리수대 기여를 했다는 얘기다.

     

    <표 8> 파독 광부 및 간호사 등 해외인력들의 한국 경제성장 기여도

     

    연도

    경상가격 GNP(A,억 원)

    경상가격 송금액(B,억 원)

    불변가격 GNP 증가액(C, 억 원)

    불변가격 송금 증가액(D, 억 원)

    B/A(국민총생산에 대한 기여도, %)

    D/C(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 %)

    1965

    8057

    45

    2134

    231

    0.6

    12.2

    1966

    1조 370

    155

    4934

    520

    1.5

    11.8

    1967

    1조 2812

    310

    299

    380

    2.4

    15.1

    1968

    1조 6529

    239

    5262

    -380

    1.4

    -6.7

    1969

    2조 1552

    199

    7157

    -206

    0.9

    -2.8

    1970

    2조 6840

    150

    4515

    -189

    0.6

    -4.0

     

    출처: 김수용, 1983, 50쪽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외화 송금은 3년 계약기간을 끝낸 뒤 미국이나 캐나다 등 제3국으로 이민한 뒤 다시 현지에서 국내에 송금한 돈까지 합치면 훨씬 늘어난다.

     

    이처럼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송금은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던 1960년대 초·중반 한국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송금은 가계 측면에선 소비(消費)와 저축(貯蓄)을 촉진시켰다. 소비 증가는 각종 소비재 산업의 생산증대를 유발했고, 저축 증가는 투자재원(投資財源)의 확대로 이어지면서 산업생산력을 확대시켰다. 국가 차원에서는 외환보유고를 늘려 새 투자를 가능하게 했고, 경제성장의 동력을 확보하는 효과도 가져왔다는 얘기다.

     

    “인력수출은 진출인원 만큼의 새 고용이 창출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의 수요를 유발해 파생적 노동수요를 일으킴으로써 고용증대(雇傭增大)에 기여한다. 해외에서 지급받는 임금은 관련 직종간의 인력확보 등을 위한 연쇄적 임금상승의 파급효과를 나타내고, 개인 노동자가 수령한 외화임금은 전체로서 국민경제에 외화수입 형태로 돼 국제수지 개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7년에는 무역수지 적자를 133.14% 보전해 경제수지가 흑자로 전환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오영모, 1978, 120쪽)

     

    즉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송금은 고용 창출, 내수 진작과 투자활성화, 외화 보유고 증가, 물가상승, 국제수지 개선 등 한국 경제의 많은 부문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그래서 광부 파독은 1965년 월남 파병, 1970년대의 중동 특수 등으로 이어지며 해외취업을 통한 한국 경제 기여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 그들이 보낸 송금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1960, 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의 디딤돌이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1974년 파독한 남편을 따라 1978년 5월부터 독일에서 살아온 정화랑이 “한국 경제성장의 씨앗은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들이 벌어들인 외화였다”고 한 다음의 평가는 결코 틀린 게 아니라는 판단이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독일 연방 공보성에 우리나라 광부의 파독 경위를 알아보려고 문의를 했다. 공보성에서는 신문을 복사해 보내왔다. 몇 년간에 걸쳐 관영통신 DPA(Deutsche Presse-Agentur)를 인용해 보도했던 신문 기사를 여러 장 복사해 보내 줬다. 나는 그것을 읽어보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씨앗은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들이 벌어들인 외화였다고 생각했다.”(정화랑, 1997, 228-229쪽)

     

    광부 파독에 많은 영향을 미친 백영훈은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한국의 1960, 70년 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 4가지 계기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즉 △1963년부터 시작된 광부와 간호사의 파독과 마르크화 △1960년 후반의 일본 청구권(請求權) 자금의 유입과 포항제철 건설 등 경제 분야 전용(轉用) △월남전 참전과 이를 매개로 한 베트남건설 특수 △1970년대 중동 건설 특수가 그것이다. 그는 그러면서도 광부, 간호사의 파독은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이었다”며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성장의 가장 첫 번째 계기(契機)가 됐다는 얘기다.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서독 광부, 간호사 파견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는 극동 조그마한 나라의 몸부림이었다. 그것이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말없이 가슴으로 맺은 공감대, 자각과 분발, 그것이 위대한 힘을 생겨나게 했다. 나는 그 불이 결코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꺼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백영훈, 2001,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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