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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9-6화) 파독 광부의 절규, “우리를 잊지 말라”
  • 운영자
    조회 수: 286, 2015.09.05 22:00:56
  • 20040605재독강원도민-14.jpg

     

    “한국 경제성장의 기초가 됐던 외화획득에 앞장섰지만, 누가 늙은 우리를 대우할 것인가. 정부가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월남에 가 죽은 사람들은 국립묘지에 묻힌다. 하지만 외화획득을 위해 인력수출 차원에서 파독된 우리들이 죽으면 국립묘지에는 묻힐 수 없다. 우리는 조국에 묻히고 싶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노년을 맞고 있는 파독 광부 이용기가 2004년 독일을 찾은 필자에게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파독 광부들이 한국 경제 성장에 기여한 만큼, 한국 정부도 최소한의 배려 또는 보답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그는 어려운 노후 생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재독 파독 광부들은 연금이 넉넉하지 않아 불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보통 20세 전후부터 노동을 시작하는 독일 사람과 달리 한국에서 온 광부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차 독일에 왔기 때문이다. 계약기간 3년을 끝낸 뒤 연금을 찾아 쓴 경우도 적지 않아 독일인들에 비해 연금 불입(拂入)년수가 상대적으로 짧았다. 노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1977년 3월 2차40진 파독 광부 김우영은 2002년 백영훈 박사가 주선했던 국내 시찰에서 겪었던 ‘씁쓸한’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다른 파독 광부와 함께 4박5일간 한국에 초청돼 포항제철과 현대그룹 등 발전한 조국의 모습을 둘러봤다. 하지만 견학 뒤에 이뤄진 만찬에서 ‘한국 경제성장의 디딤돌’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보다 ‘거렁벙이처럼 얻어먹고 다닌다’는 일부의 부정적인 시선을 목도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잘 살지는 못하지만, 도둑질을 하며 살아오진 않았다. 미국의 일부 동포처럼 나랏돈을 훔쳐 정착하지도 않았다. 유산을 많이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순수하게 우리 능력대로 떳떳하게 일해 부를 형성하고 사회를 만들어왔다. 국가가 돈이 없을 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됐던 게 바로 우리다. 우리를 비하하지 말라.”

     

    김우영은 1998년 대동맥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심장판막 수술을 받은 뒤 광산노동을 그만뒀다. 2006년 현재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2차43진 파독 광부 김일선도 그 동안 겪었던 한국인들과의 아쉬운 기억을 털어놨다. 한국이 고도성장 이후 어느 정도 살게 된 2000년 이후 일부 한국인이 파독 광부에 대해 비아냥거리거나 동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많은 파독 광부들이 핍박을 당해왔다. 독일 관광을 온 일부 한국인은 ‘왜 이런 곳에서 사느냐’는 비아냥거림과 동정의 시각도 없지 않았다. 가끔 한국에 들어가면 우리를 ‘완전히 별 게 아닌 사람’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금전적인 혜택이 아니다. 우리에 대한 따뜻한 시각, 역사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규명해 주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종합적이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1차7진 파독 광부 이원근과의 현지 만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는 2004년 독일의 고속도로 어느 휴게소에서 취재를 위해 찾아온 필자의 두 손을 붙잡고 “광부 파독이 한국 경제성장에 어떻게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꼭 규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어떤 도움도 마다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원근의 얘기와 간절한 눈길을 보면서 그의 진정성을 결코 의심할 수 없었다. 이원근의 하소연이다.

     

    “한국 경제가 조금 발전하니까 이제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다. 광부 파독이 없었다면, 우리들이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한국경제가 있었겠느냐. 아직도 한국에서는 광부 출신을 폄훼하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깨뜨려달라. 우리가 한국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을 증명해달라.”

     

    재독 대한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2차 파독광부 장재인도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가장 활발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온 파독 광부 가운데 한 명이다. 장재인은 파독 광부들이 묻힐 곳이라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낳은 2세들이야 독일에서 자랐기 때문에 앞으로 독일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우리에게 고향은 한국이다. 독일이 결코 고향이 아니다. 가끔 고향에 가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과연 우리가 한국에 묻힐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독일에서 청춘을 불살라 한국 경제성장의 디딤돌을 놓은 파독 광부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래서 고독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50여 년 동안 현실과 역사의 영역 모두에서 사실상 ‘잊혀진 존재’였다.

     

    1979년 남편의 프랑크푸르트 부임을 따라 7년간 독일에 머물렀던 김지수는 단편 소설 「고독한 동반」에서 한 퇴직 파독 광부의 고독한 초상(肖像)을 그렸다. 그는 소설에서 ‘휴지같이 구겨져 버린 내 삶’ ‘한 마리 똥개’라는 표현으로 퇴직한 파독 광부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심지어 ‘더러운 꼬리털을 하고 한 덩이의 먹이를 위해 하루 종일 주인의 꽁무니를 어슬렁거리며 따라다니는 똥개’ 같다고 탄식했다. 소설의 일부다.

     

    “마지막 스페인 여자와 헤어진 후 내내 혼자 살고 있는 나는 고독감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게 고통스럽고 가혹한 것인가를 점차 절감하고 있었다. 광산 사고의 후유증으로 온전치 못한 신체에다 이미 패기 잃은 나이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직도 멀쩡한 내 육신의 한 귀퉁이에는 빈손으로 유학을 하기 위한 변칙 수단으로 파독 광부 모집에 지원하던 20대 시절의 그 도전적이고 맹목적인 의욕과 열정이 희미하게나마 살아 숨쉬고 있는지 어쩐지 알 수 없는 대로, 나는 이미 휴지 같이 구겨져 버린 내 삶에 대한 무의식적인 포기와 머지 않은 노쇠와 질병,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과 초조감으로도, 잔뜩 찌들어져 있었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렇다고 젊은 날의 웅대하고 무모한 꿈을 송두리째 내다 버리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상태로 나는 아주 보잘 것 없고 초라하게 시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실 나는 더러운 꼬리털을 하고 한 덩이의 먹이를 위해 하루 종일 주인의 꽁무니를 어슬렁거리며 따라다니는 똥개 녀석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처지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 양육자가 마침내 의무를 포기할 때 그 쓸모없는 친구는 혀를 빼물고 죽어갈 것인가. 내게 있어 쇠고기 한 덩이는 인색한 독일 정부의 연금일 것이다.”(김지수, 1993, 8-9쪽)

     

    한국 현대사에서 현실적, 역사적 성취를 이뤄낸 파독 광부. 하지만 현실과 역사의 영역 모두에서 그들의 피와 땀의 대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파독 광부의 고독(孤獨)과 울분(鬱憤)의 본질이다. 조국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 그들의 눈물은 아리랑이 되고 있었다.

     

    <참고 자료>

    MBC <파독 광부·간호사 울린 초청행사...졸속 추진·자금난에 무산>(20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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