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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10-3화) ‘일괄거래의 마술사’ 슐 아이젠버그
  • 운영자
    조회 수: 375, 2015.09.05 22:52:11
  • 슐 아이젠버그-snipview.com캡처.jpg

    <슐 아이젠버그-snipview.com 캡처>

     

    서독 기업의 ‘한국 특수’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기록(記錄)되고 기억돼야 할 사람이 있다. 바로 유태계 출신의 서독 ‘브로커’ 슐 아이젠버그(Shaul Eisenberg·1921-1997)이다. 아이젠버그는 서독 기업의 ‘한국 특수’ 정점에 서 있었던 인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문명자(1997.8, 48-55쪽 및 1999, 209-239쪽 등 참조)와 백영훈 등의 자료와 증언을 종합하면, 1921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유태계 출신인 아이젠버그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당시 박해를 피해 일본 가마쿠라(鎌倉) 지방으로 피신했고, 1941년 그를 구해준 일본 여성과 결혼해 아시아에서 활동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주로 수입품 중계를 통해서 돈을 벌었다. 오스트리아와 이스라엘의 이중 국적 소지자였던 그는 자유당 시절 서울 반도호텔 209호실에 사무실을 차린 뒤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접근했다. 백영훈의 증언이다.

     

    “지프차를 생산하던 윌리스 오버랜드 모터스(Willys-Overland Motors)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던 아이젠버그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윌리스 지프차 한 대를 기증했다. 그와 경무대는 이를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아이젠버그는 이후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부와 깊숙한 관계를 맺은 뒤 호남 출신 기업가 이문환 등을 매개로 호남비료 나주공장 건설권을 따냈다. 1959년 도입된 서독 지멘스사의 전화교환기도 중계했다. 특히 아이젠버그는 호남비료 나주공장 건설과정에서 농민들의 ‘쌈지돈’을 받았지만 독일에서 중고시설을 들여오는 바람에 부실시공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남미, 동남아, 중동 등에서 많은 사업에 관여했다. 자금이 부족한 나라에 서독 또는 다른 정부-기업-은행-건설 회사를 연결시켜 자금도 마련해주고 사업도 성사시키는 ‘일괄 거래(一括去來)의 조정자(調停者)’였다(문명자, 1999, 220쪽; 조갑제, 2001a, 53-54쪽 참조).

     

    아이젠버그는 또 한·일간 국교 정상화 협상과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에도 배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김종필 등 당시 실력자들에게 일본 기업을 소개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필은 이미 1961년 10월 이래로 일본과 접촉해 왔음이 명백했다. 1962년 2월 (주한미국)대사관은 이스라엘의 사업가 슐 아이젠버그가 일본 기업인과 김종필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보고해 왔다.”(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 1986, 342쪽)

     

    박정희 대통령 시절, 아이젠버그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사업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가 엮어준 사업목록은 ‘한국 기간산업 총람’으로 보일 정도라는 지적까지 낳을 정도다. △영월 화력 2호기 △부산화력 3-4호기 △영남화력 1-2호기 △인천 화전 △월성 원전 3호기 △동해 화력 1, 2, 3호기 △쌍용시멘트 △고려시멘트 △동양시멘트 △한일시멘트 △일신제강 △유니온 셀로판 △피아트 자동차 △석탄 공사의 채탄시설 현대화 △중앙선 전철화 △포항제철 증설 등등(조갑제, 2001a, 53-54쪽 참조).

     

    아이젠버그는 서독 상업차관 유치과정에 개입한 뒤 이를 바탕으로 독일 기업들이 차관으로 벌이는 사업의 수주를 따낼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서독 정부 등에는 한국의 상업차관을 유도하기 위한 로비를 펼치고, 반대로 사업 수주를 원하는 서독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커미션을 받고 한국 정치권에 거액의 정치자금(政治資金)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은 1965년 호남비료 나주공장 안에 메탄올과 질산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500만 달러짜리 호남비료 제1차 확장공사 발주과정에서 드러난다. 1963년부터 1970년까지 호남비료 나주공장 사장을 역임한 김윤근은 아이젠버그의 행태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김윤근(1987, 241-244쪽 참조)에 따르면, 김윤근은 호남비료 제1차 확장공사에 필요한 외화를 구하기 위해 영국과 서독을 차례로 방문했다. 먼저 영국으로 갔다. 하지만 영국 은행은 “한국은 외환사정이 나빠서, 미안하지만, 차관제공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서독으로 날아갔다. 다행히 호남비료 나주공장을 건설한 루르기사의 소개로 서독 산업은행으로부터 “차관 신청이 제출되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김윤근은 귀국해 곧 서독과 미국, 일본의 엔지니어링회사에서 사업 견적서를 받아 비교 검토한 끝에 사업자 후보를 서독의 루르기와 미국의 코퍼스(Koppers) 두 회사로 압축됐다. 그는 양사를 경쟁시켜 건설비 견적을 600만 달러에서 460만 달러까지 내려가도록 했다. 그는 1965년 9월20일 이사회를 열어 미국 코퍼스사에 공사를 주기로 결정했다. 코퍼스를 택한 이유는 건설비 견적을 낮추는 데 루르기사보다 더 성의를 보였고 루르기의 한국 대리점인 아이젠버그 상사가 나주 공장의 보수용 부품공급에 지나친 이윤을 추구해왔다는 판단에서다.

     

    아이젠버그상사는 완곡하게 항의해 왔다. 서독 산업은행의 차관을 주선해 준 루르기에 공사를 주지 않으면 서독차관을 얻을 수 없게 된다고 압박했다. 김윤근은 이에 “코퍼스가 미국은행 차관을 주선해주기로 했으니 걱정 말라”고 응수해줬다.

     

    아이젠버그는 자기 힘으로 안된다고 판단되자 정치적 압력을 동원해 다시 공격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호남비료의 확장공사를 루르기사에서 발주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이 제3자를 통해 전해왔다. 김윤근은 “대통령이 할일이 없어 400만 달러짜리 작은 공사를 누구에게 주라 말라 하겠느냐, 이것은 비서실장의 장난”이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며칠 후 김윤근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호남비료 확장공사 사업권을 루르기사에 주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직접 듣는다. 김윤근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고, 박 대통령의 ‘말씀’대로 루르기사에 호남비료 확장공사의 발주를 맡기기로 했다. 며칠 후 아이젠버그가 김윤근을 찾아왔다.

     

    “정치헌금을 준비해 왔습니다. 김 사장이 전달하시지요.”

     

    사업 수주의 대가로 당시 여권에 정치자금을 전달해달라는 것이었다. 김윤근은 정치자금 전달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받은 돈에 얼마를 보태 전달해도 일부를 떼먹었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노댕큐(No thank you)! 그것은 당신이 직접 갖다 드리시오.”

     

    결국 루르기사의 한국 대리점을 운영하던 아이젠버그는 서독 산업은행에서 호남비료 제1차 확장공사 발주 공사에 필요한 400만 달러의 차관을 빌리는 데 도움을 준 뒤 박정희 대통령,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통해 사업 수주(受注)를 따낸 것으로 보인다.

     

    김윤근은 “공사비 견적을 깎을 대로 깎은 후에 정치자금까지 내게 했으니 공사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은 것은 호남비료였다”(244쪽)고 회고했다.

     

    아이젠버그의 이 같은 행태는 이듬해 11월 있었던 호남비료 제2차 확장공사 발주에서도 재연됐다고 한다. 김윤근(1987, 245-247쪽 참조)에 따르면 호남비료는 무연탄 가스화로를 경유가스 화로로 바꾸면서 비료 생산능력을 50% 증가시키는 공사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외국 엔지니어링회사에 견적을 내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은 제1차 확장공사 발주 때 루르기사가 한 일이 소문이 나 보나마나 이번 공사도 루르기에 떨어질 것이라며 견적을 내지 않았다. 김윤근은 겨우 설득해 일본의 우베고상으로부터 견적을 받아 루르기와 경합을 시켰다. 건설비를 385만 달러로 깎은 뒤 우베고상으로 내정했다. 우베고상 대리점은 아이젠버그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미리 손을 썼다. 즉 당시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 김성곤 의원과 정치자금 협상을 끝내고 후원을 약속받아 뒀다. 김성곤이 오찬에서 김윤근에게 물었다.

     

    “당으로서는 호남비료 확장공사를 일본의 우베고상에 주었으면 하는데 귀사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회사로서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미리 의논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락 실장은 내가 책임지겠소.”

     

    김성곤 위원장은 자신 있게 말했다. 김윤근은 이로써 호남비료 확장공사 시공업자 선정문제가 말썽 없이 끝나는 줄 알았다. 1966년 10월20일 이사회를 열어 호남비료 제2차 확장공사의 시공업자를 우베고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다음날 장기영 부총리가 김윤근을 호출했다. 부총리 비서실에 가니 비서가 먼저 와 기다리는 사람들을 젖혀놓고 ‘기다리고 계시니 빨리 들어가라’고 전했다. 장 부총리는 김윤근을 보자 대뜸 말했다.

     

    “호남비료 확장공사의 시공업자를 우베고상을 선정했다는 게 사실이오?”

    “예, 그렇습니다.”

    “기술적으로 지장이 있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런 게 아니면 시공업자를 루르기로 바꿀 수 없겠소?”

     

    결국 김윤근은 장기영 부총리의 ‘말’에 따라 호남비료 확장공사 시공업자로 우고베상에서 루르기사로 양보하기로 했다. 부총리실을 나오니 비서실에 아이젠버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젠버그가 김윤근을 보고 다가와서 말했다.

     

    “김 사장 때문에 더블(Double)로 내게 되었습니다.”

     

    아이젠버그가 여권에 정치자금을 두 배로 내게 됐다는 뜻이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소.”

     

    김윤근은 아이젠버그에게 이렇게 쏘아붙이고 부총리실에서 나왔다. 김윤근은 “손오공이 날고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에서 논다더니 호남비료가 그 꼴이 됐다. 아무리 용을 써봤자 아이젠버그 상사의 정치헌금 위력 앞에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247쪽)고 회고했다.

     

    아이젠버그는 당시 여권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박정희 대통령과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 장기영 부총리 등 정관계 최고위층 인사들을 통해 호남비료 제1, 2차 확장공사 수주를 독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 정치자금을 제공, 각종 공사를 따내는 아이젠버그의 행적은 한국의 기록뿐만 아니라 1976년 ‘코리아 게이트(Koreagate)’ 사건이 터진 후 조직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인 소위 ‘프레이저위원회’의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재미언론인 문명자의 지적이다.

     

    “프레이저위원회는 무기상인 슐 아이젠버그가 수년간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아이젠버그는 계약 성사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청와대 보좌관들에게 계약액의 25%에 달하는 커미션을 지불하고 계약을 따냈다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 아이젠버그는 공화당과 고위 관리들에게 차관, 증여, 상납금 조로 500만 달러 이상을 지불했다고 한다.”(문명자, 1999, 230-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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