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10-4화) 아이젠버그, 베일 속 역할을 찾아서
  • 운영자
    조회 수: 340, 2015.09.05 23:08:47
  • 박정희-다큐멘터리 박정희와 김일성 캡처.jpg

    <박정희 대통령-'다큐멘터리 박정희와 김일성' 캡처> 

     

    슐 아이젠버그는 서독 차관으로 촉발된 ‘한국 특수’를 주도적으로 챙긴 대표적인 인사였다. 그가 한국 특수를 대거 챙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독 차관 교섭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채무 의식(債務意識)’이 자리했다. 실제 호남비료 확장공사 수주 과정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아이젠버그에 대한 채무의식은 대단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 때문에 아이젠버그에게 사업 수주권을 넘기도록 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윤근(1987, 241-244쪽 참조)에 따르면, 아이젠버그는 호남비료 제1차 확장공사 사업자가 이사회에서 미국 코퍼스(Koppers)사로 결정되는 등 코퍼스사로 기울자 정치적 압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1965년 9월 호남비료 이사회가 열린 며칠 뒤 국방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 축하 리셉션.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김윤근과 악수하면서 질문해왔다.

     

    “호남비료 확장공사를 서독차관에 공이 많은 회사에 주지 않고 다른 회사에 줬다던데 사실이오?”

     

    박정희 대통령은 나중에 대통령 집무실로 김윤근을 다시 불렀다. 박 대통령은 집무실에 온 김윤근을 반갑게 맞이하며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그 자신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러면서 거듭 호남비료 확장공사 사업권을 루르기사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루르기가 서독차관 1억불을 우리나라에 제공케 하는 데 막후에서 크게 도와준 회사요. 확장공사 발주는 그 회사에 주는 게 좋겠소.”

     

    김윤근은 루르기사가 호남비료 확장공사를 위한 400만 달러의 차관을 주선해 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1억 달러의 차관 주선에 힘썼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근거도 없이 대통령의 말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김윤근이 말했다.

     

    “저희는 루르기가 그렇게 공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코퍼스를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견적 가격의 인하협상에 코퍼스가 성의를 보여 줬다는 것과 루르기의 대리점 아이젠버그상사가 나주공장 보수용 부품공급에 폭리를 취하고 있어서 루르기와 거래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그러나 루르기가 서독차관에 공이 많다던데….”

     

    박정희 대통령은 김윤근의 말에 이같이 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김윤근은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이렇게 말하는 상황에서 거부할 수 없었고, 결국 아이젠버그가 후원하는 루르기사로 호남비료 확장공사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김윤근의 증언을 분석해보면, 박 대통령은 아이젠버그가 한국 정부의 서독 상업차관 교섭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인식했고, 이런 인식에 따라서 서독 차관으로 촉발된 많은 사업 발주에서 아이젠버그에게 ‘특혜’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아이젠버그에 대해 과도한 또는 비정상적인 채무의식이 결과적으로 아이젠버그 측에게 여러 특혜를 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국부 유출을 비롯한 국익 훼손에 대한 박 대통령의 책임 논란도 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판단 대로 1961년 우리 정부의 서독 차관 교섭 과정에서 아이젠버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까(물론 박 대통령의 인식대로 아이젠버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각종 사업수주에서 특혜나 이익을 주는 문제는 별도로 논의해야 할 것이지만). 1961년 서독 차관 교섭과정을 추적한 결과, 아이젠버그는 당시 한국 경제사절단과 동행했고, 정부 관료들이 서독 기업을 견학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를 취했다는 게 확인됐다. 이는 기록과 증언에서 일치한다.

     

    “아이젠버그가 처음으로 서독 차관 도입을 중계한 것은 1961년 가을이었다. 아이젠버그는 정래혁 당시 상공부장관이 서독의 관료들과 기업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손을 써 놓은 뒤 정 장관과 함께 차관도입 교섭차 1961년 11월13일 독일로 출발했다. 아이젠버그는 정 장관을 안내해 크룹사, 지멘스, 하노버 조선소 등 서독의 유수한 회사를 돌아보게 했다.”(조갑제, 2001a, 53-54쪽)

     

    하지만 아이젠버그는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참여했으며, 실제 교섭 과정에서 많은 혼선을 초래해 도리어 방해가 되는 측면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차관 교섭 핵심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 경제사절단과 함께 간 아이젠버그는 스위스 일정뿐만 아니라 독일 일정도 이미 자신의 의도대로 준비했다. 즉 한국 경제사절단의 시찰 일정을 자신이 에이전트로 있는 회사인 지멘스, 게하하, 휙스트, 루르기 중심으로 잡았던 것이다. 특히 아이젠버그 측은 사절단이 독일에서 묵던 호텔 경비를 ‘주식회사 아이젠버그’의 부사장인 벨로크 만이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사절단에 금전(金錢)적인 ‘편의(便宜)’를 제공하기도 했다. 사절단의 일부 인사는 아이젠버그 측의 이 같은 조치에 ‘잘못하면 아이젠버그의 농간에 놀아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차관 교섭이 파행으로 치달을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에 단장인 정래혁 장관은 특별 보좌관이던 백영훈에게 물었다.

     

    “(아이젠버그와 관련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아이디어가 있는가?”

    “장관님께서 병원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젠버그가 잡은 일정은 다시 짜야 할 겁니다.”

     

    건강 문제로 현지에서 한 차례 쓰러지기도 했던 정래혁 장관은 이틀간 병원에 입원했다. 아이젠버그가 준비한 방독 일정을 바꾸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백영훈은 이 사이 아이젠버그가 정해준 일정을 바꿨다. 가급적 아이젠버그의 입김을 최소화하는 방향이었다. 국내에서 전화 사업을 벌이는 지멘스는 그대로 넣는 대신, 게하하나 루르기 등은 제외하고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츠 벤츠(mercedes-benz), 만네스만 데마그(Mannesman Demag) 등을 새롭게 추가했다. 아이젠버그는 이에 신응균 주서독 한국대사를 통해 방독 일정과 대상 등을 놓고 정 장관과 백영훈을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소신대로 방독 일정을 밀어붙였다. 아이젠버그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정 장관은 이후 아이젠버그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등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고위 관리에게도 아이젠버그를 만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독일 측에서도 아이젠버그를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일부 독일 고위 관료도 “아이젠버그가 끼어선 안된다”며 아이젠버그의 행태를 한국 정부 측에 귀띔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정 장관 등 사절단의 노력으로 한국 정부는 호남비료 나주공장 확장공사, 인천제철, 인천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 석탄공사의 전신인 광산기계, 동양시멘트 등을 건설할 상업차관을 얻는 데 성공했다.

     

    물론 앞에서 밝혔듯이, 아이젠버그 측은 이 같은 ‘난관’을 뚫고 호남비료 나주공장 확장공사(루르기)와 동양시멘트 건설공사(폴리시우스) 등을 독일 기업이 수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심 후한 자는 속임을 당한다,

    인색한 자는 빨아 먹힌다,

    따지기 잘하는 놈은 남의 꾀에 빠진다,

    사리에 밝은 놈은 속 빈 강정이다,

    강한 자는 따돌림을 당한다,

    멍청한 자는 사로잡힌다.

    이런 거짓말들을 꿰뚫어 보라,

    기만당한 자여, 기만하는 자들을 기만하라!

    -괴테, 「다른 다섯 가지」에서

     

댓글 0 ...

위지윅 사용
번호
제목
닉네임
78 운영자 165 2016.01.10
77 운영자 221 2016.01.09
76 운영자 153 2016.01.09
75 운영자 137 2016.01.09
74 운영자 204 2015.09.05
73 운영자 429 2015.09.05
운영자 340 2015.09.05
71 운영자 375 2015.09.05
70 운영자 248 2015.09.05
69 운영자 461 2015.09.05
68 운영자 282 2015.09.05
67 운영자 229 2015.09.05
66 운영자 457 2015.09.05
65 운영자 227 2015.09.05
64 운영자 316 2015.09.05
63 운영자 202 2015.09.05
62 운영자 511 2015.09.05
61 운영자 496 2015.09.05
60 운영자 273 2015.09.05
59 운영자 272 2015.09.05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