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10-5화) ‘박정희 신화’와 파독 광부의 진실
  • 운영자
    조회 수: 434, 2015.09.05 23:13:30
  • 10장용B20060212DSCN1292.JPG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과 더 나아가 ‘박정희 신화(神話)’로 나아가는 보수(保守), 박정희 시대의 역사적 성취를 원초적으로 부정하고 외면하는 진보(進步).

     

    1960, 70년대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경제성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위와 역할 등을 둘러싼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극단적인 평가가 그것이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이념의 과잉(過剩)’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과 진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실패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병천은 두 진영의 이념적 접근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박정희 시대의 성취를 애써 외면하는 ‘근본주의적 초(超)비판’도 물론 문제지만 냉전 초국가주의, 돌진주의의 위험성을 망각하는 ‘무반성적 승리주의’, 미성숙한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찬물을 끼얹는 박정희 우상화(偶像化) 담론이야말로 탈냉전 민주화시대 박정희 바로보기의 최대 장애물이다.”(이병천, 2003, 4-5쪽)

     

    즉 진보 진영은 1960, 70년대 박정희 시대의 성취를 ‘초비판’적으로 애써 외면하고 있고, 보수 진영은 무반성적으로 승리주의, 박정희 우상화 담론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념적, 진영(陣營)적 접근은 총체적 진실의 합리적 접근을 가로막는다.

     

    물론 1960, 70년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문제제기도 있다. 이정우는 ‘경제성장(economic growth)’과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을 구분한 뒤 ‘경제발전’은 단순히 소득의 증가만이 아닌 ‘자유로서의 발전’이란 개념이 추가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961, 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급속한 소득성장을 경제발전이 아니라 단순한 양적 성장으로 정의하기도 한다(이정우, 2003, 221-228쪽 참조).

     

    특히 이정우는 박 대통령이 찢어질 듯한 가난을 없앤 공로는 크지만, 훨씬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달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노동자 농민 등의 희생 위에서 급격한 성장이 이뤄졌고, 오로지 효율성과 성장이 숭상된 나머지 형평과 인권은 무시돼 왔으며, 결과적으로 관치경제, 관치금융, 재벌의 폐해, 부정부패, 환경훼손, 공동체 붕괴, 불신사회, 인간성 파괴, 반칙사회, ‘빨리빨리 병’ 등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남겼다는 것이다. 그는 차라리 좀 느리더라도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드는 개발방식이었다고 주장했다.

     

    “고도성장을 달성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지독한 독재를 해야 했느냐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답은 ‘아니오’이다. 그리고 무리하게 고도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치른 각종 비용-관치경제, 관치금융, 재벌의 폐해, 부정부패, 환경훼손, 공동체 붕괴, 불신사회, 인간성 파괴, 반칙사회, 빨리빨리 병 등-을 우리가 아직도 치르고 있고 앞으로도 장구한 세월 동안 치러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시기의 고도성장이 우리 민족에게 장기적으로 플러스인지도 의문이다. 차라리 좀 더 천천히 성장하더라도 정상적인 궤도를 거쳤더라면 지금쯤 훨씬 선진적인 나라가 돼 있지 않을까?”(이정우, 2003, 242쪽)

     

    ‘불균형(不均衡) 성장발전론’을 핵심으로 하는 1960, 70년대 한국 경제의 성격과 평가에 대한 이정우의 근원적인 문제제기는 일 리가 있어 보인다. 다만 여기에서는 시간과 역량 등의 문제로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이 같은 한계를 미리 가정하고 1960, 70년대 한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지위와 역할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시민이나 민중, 박 대통령과 정부, 기업, 미국 등 국내외 변수 등의 지위와 역할, 성과와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각 주체별로 누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각 주체 간 역학 관계는 어떠했는가, 결과적으로 어떤 성과와 한계를 낳았는가. 이완범의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시사적이다.

     

    “박정희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컸거나 아니면 박정희의 공을 과장했기 때문에 ‘한강의 기적’을 박정희가 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 성장도 역시 복합적 결과였던 것은 틀림없다. 다만 당시 국부의 크기가 작아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한강의 기적은 노동자의 피와 땀의 대가에 기반해 박정희 정부 정책이 주효한 결과이지만 다른 요인(미국의 지원과 중동 특수, 대일 청구권, 베트남전쟁 등 국제적 조건)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지도자가 국민 역량을 동원해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성공을 거둔 것이므로 크게는 지도자와 국민 양자가 복합적,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여기에다 국제적 환경도 작용한 것이다.”(이완범, 2006, 21-22쪽)

     

    즉, 이완범은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피와 땀이 기반이 됐고, 박정희 정권의 정책이 주효했으며, 여기에 미국 및 서독 차관과 베트남전, 중동 특수 등 대외 변수도 복합적으로 긍정 작용했기에 급격한 한국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1960, 70년대 한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차지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지위와 역사적 평가는 이 같은 큰 틀의 평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 지하에서 근면 성실하게 일함으로써 서독 차관 도입과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구축에 적지 않게 기여했고 △독일 현지에서 획득한 외화를 국내에 송금, 초기 자본을 축적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즉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다. 실제 독일 지하에서, 병원에서 자신의 삶과 조국 경제에 기여하고자 했던 그들의 ‘땀과 눈물’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자신의 청춘을 불살라 받은 월급의 70-80%를 조국으로 송금했던 그들이 아닌가.

     

    “만났던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첫 월급부터 80% 정도를 고국으로 송금하고 있었다. 우선 빚을 갚아야 했고,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 책임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 세대였다.”(김도미니카, 2003.3.3, 11면)

     

    따라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1960, 70년 한국 경제성장의 첫 주역(主役)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땀과 눈물은 시기적으로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그들의 희생에 따른 ‘월남 특수’, 중동 건설 붐과 건설 노동자들의 노고에 의한 ‘중동 특수’ 등에 앞서 있다는 점에서 ‘한강의 기적’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독 광부들은 현실의 영역에서도, 역사의 영역 어디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또 다른 주체인 박정희 대통령이 ‘신화’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며 고(高)평가받는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역시 조갑제 이인화 등 일부 지식인이 박 대통령의 비중과 역할에만 과도하게 주목하고 평가하면서 파독 광부와 민중의 역할을 의도적 또는 결과적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즉 박정희 정권의 첫 해외 차관이었던 서독 차관 도입과 광부 파독과의 관계를 면밀하게 추적하지 않은데다가 파독 광부 및 간호사들의 외화 송금 등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바와 그들의 땀과 눈물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가져왔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하지 않음으로써 파독 광부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를 가로막은 셈이다. 파독 광부들의 현지 생활과 이후 삶과 생활에 대한 정밀한 추적과 분석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땀과 눈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대신 이 모든 성과를 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돌려버린 ‘오류’에 빠짐으로써 파독 광부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박정희 대통령만 신화가 돼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박정희 신드롬’이 일기 시작하던 1997년 한국 경제성장의 진정한 주역은 박 대통령이 아니라 파독 광부를 비롯한 민중이었다고 외치는 박재순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경청할만하다.

     

    “경제성장의 주역은 기업가도 박정희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이 땅의 민초(民草)들이다. 지난 30년 동안 피땀을 흘리며 허리띠를 졸라가며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과 살인적인 작업환경에서 부를 축적한 것은 이 땅의 노동자와 농민들이었다. 배를 곯으면서도 자식을 대학에 보낸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경제성장의 진정한 주역이었다.”(박재순, 1997.8, 60쪽)

     

댓글 0 ...

위지윅 사용
번호
제목
닉네임
78 운영자 168 2016.01.10
77 운영자 224 2016.01.09
76 운영자 156 2016.01.09
75 운영자 146 2016.01.09
74 운영자 207 2015.09.05
운영자 434 2015.09.05
72 운영자 345 2015.09.05
71 운영자 380 2015.09.05
70 운영자 249 2015.09.05
69 운영자 466 2015.09.05
68 운영자 286 2015.09.05
67 운영자 230 2015.09.05
66 운영자 463 2015.09.05
65 운영자 228 2015.09.05
64 운영자 320 2015.09.05
63 운영자 203 2015.09.05
62 운영자 556 2015.09.05
61 운영자 504 2015.09.05
60 운영자 279 2015.09.05
59 운영자 278 2015.09.05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