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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10-6화) 지켜지지 못한 대통령의 약속(約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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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200, 2015.09.05 23: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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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파독 광부들의 건의사항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1964년 12월10일 독일 뒤스부르크시 시민회관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파독 광부 300여명과 파독 간호사들이 보는 앞에서 이같이 말했다. 파독 광부 유제천이 대표로 전한 파독 광부들의 건의사항(建議事項)에 대해서다. 한 마디로 파독 광부들의 건의사항을 적극 검토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약속(約束)’이었다.

     

    유제천은 파독 광부들의 대표로서 이날 긴장된 목소리로 국내 귀국 후 일터 주선을 비롯한 6개항을 박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저희들은 본래 3년 계약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3년 계약이 끝나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직장을 보장해 주십시오.”

     

    파독 광부들은 이어 △국내로 송금하는데 환율을 조정, 부담을 줄여 달라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 계속 서독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해달라 등 6개의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신화’로까지 추앙받는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의 또 다른 주역인 파독 광부들에게 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이후 취한 조치나 정부의 모습은 당시의 약속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6개항 가운데 첫 번째인 ‘귀국 후 일터 주선’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 3년 계약기간을 마치고 귀국한 파독 광부 1차1진의 경우 귀국 후 한국석탄공사 등에 의해 취직이 알선된 사람은 겨우 32명에 불과했다.

     

    “이들(파독광부 1차1진 귀국자 115명) 중 32명은 한국석탄공사에 취직이 알선됐고 광부 대부분은 배워온 기술을 활용, 공장 등을 경영해보겠다고 굳센 생활의욕을 보여주기도(했다).”(이용승, 1966.12.22, 4면)

     

    ‘고용기간 만료 후 체류 연장 지원’도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파독 광부들은 체류 연장이 여의치 않자 체류 연장이 보장된 파독 간호사와 결혼을 서두르거나 대서양을 가르는 ‘선원’이 됐다. 정부의 대응에 따른 제도 개선을 통해 체류 연장이 이뤄진 게 아니라 파독 광부 개개인들의 노력에 맡겨졌던 것이다.

     

    특히 ‘ILO 가입’ 약속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기간 내내 권력 강화 및 연장을 위해 노동운동을 극단적으로 탄압하는 등 정반대의 모습까지 보였다. 한국의 ILO 정식 가입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에야 이뤄졌다. UN가입과 동시에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던 것이다.

     

    파독광부 1차2진 출신인 권이종이 이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약속이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은 타당하다.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그의 말은 아프고도 아프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깨달은 것은, 독일에서 일했던 우리 광부들에게 간접적으로 약속했던 몇 가지 사항을 정부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64년 박 대통령께서 독일 광산촌을 방문하셨을 때, 연설 가운데 독일에서 열심히 일하고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약속한 것을 떠올려보니, 우리 광부들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귀국 후 나를 포함해 학자나 다른 직종에 종사한 모든 동료 광부들이 정부의 혜택에 의해 한국에 다시 정착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권이종, 2004, 14-15쪽)

     

    파독을 추진하던 한국 정부의 정책 과정(政策過程)을 봐도 아쉬움이 가득하다. 광부들의 파독이 서독 차관의 도입과 한국 경제성장을 위한 외화의 확보 차원에서 추진된 측면이 적지 않음에도 한국 정부는 파견된 광부들에 대해 인권 및 권리보장에 소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노무관리 차원에만 머물렀다는 얘기다.

     

    “기능공과는 달리 특히 광부와 간호사 파독의 경우, 정부의 인력수출 정책의 주안점은 가능한 많은 노동력을 해외로 내보내면 국내 노동수급의 원활화에 보탬이 되고 사회문제 발생이 감소되며 이들의 본국 송금으로 인한 외화획득으로 경제발전에 이익이 된다는 사회적·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는 데만 두어졌다. 해외취업 근로자들이 체재당사국의 경기변동과 노동정책의 변화로 인해, 또는 자신들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판단착오, 언어장벽에서 오는 의사표시의 불충분 등으로 인해 받게 될 불이익,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한 권익보호 문제는 물론, 근로자들의 법규와 제도 또는 관습에 대한 무지에서, 혹은 이를 알고서도 악용하는 데서 야기되는 국가의 대외적 위신의 손상문제 등에 대한 이렇다 할 사후대책이 강구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 말까지 이미 이탈광부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었음에도 현지 노무관에 의한 지도·통제에만 의존하는 등 극히 미온적인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적격자도 아니고 광부가 근본적인 목표도 아닌 무자격자들이 선발·파독될 수 있었던 파독 광부의 선발과정 자체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파독 후 광업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독일을 단지 제3국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한 광부들의 광산 생활과 개인생활에 대한 지도와 통제는 물론 이들의 국가관과 직업관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배려와 노력도 반드시 뒤따라야 했는데도 이것이 배제됐다. 즉, 정부는 단순히 인력의 해외진출과 외화획득만 중요시할 게 아니라 근로자로부터 피땀의 대가인 외화를 받는 대신 이들의 권익보호 등에도 관심을 가져 주는 등 지도·감독의 의무를 수행해야만 했는데도 이를 너무나 소홀히 했던 것이다.”(정해본, 1988, 156쪽)

     

    파독 광부들은 국가와 정부에 적잖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가슴 속으로 ‘국가란 무엇인가, 정부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오죽하면 파독 광부들은 “노동수출이라는 미명 아래 무계획하고 무절제한 방법으로 한창 피어나는 젊은이들을 이 가시밭길에 넘”겼다고 비판했을까. 파독 광부 염천석의 지적은 그래서 뼈아프다.

     

    “이 처절하고 슬픈 싸움은 누굴 위해 하는 것일까? 어쩌면 서부 독일의 금화를 땅속에서 긁어다가 소위 정치한다고 설치는 양반들의 호화로운 외유에 보태주는 갸륵한 충성심에서 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에 앞서 울분이 치솟는다. 매달 우리들의 손을 거쳐 보내지는 송금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에 우리를 마치 외화획득의 선구자인양 추켜대는 밥맛 없는 친구들도 있다. 물론 가난한 나라 살림과 국민의 쪼들린 생활을 위해 서독에 경제 원정이라는 문호를 개방해 준 당국자의 노고에 심심한 감사를 표하지만, 한편 이들 당국자에게 다그쳐 묻고 싶은 것은 노동수출이라는 미명 아래 무계획하고 무절제한 방법으로 한창 피어나는 젊은이들을 이 가시밭길에 넘기고도 장한 듯이 착각하고 있다면 한번쯤 반성해 보라고 호소해 두고 싶다.”(염천석, 1966.4,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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