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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블랙리스트 파문과 공정한 재판(201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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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1591, 2018.02.06 09: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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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리스트 파문과 공정한 재판(2018. 2. 5)

     

    법무법인 화우의 양삼승 고문변호사는 사법시험 14회에 수석 합격한, 한때 잘 나가는 판사였다. 부친은 박정희정권의 국가배상법 위헌 결정을 내렸다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고(故) 양회경 대법관. 

     

    그는 서울형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인 1992년 ‘운명적 사건’을 맞닥뜨린다. 검사가 피고인에게 10년형 이상을 구형하면 구속영장의 효력을 유지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검사 구형이 판사의 판결을 제한하는 건 잘못이라는 판단에서다. 헌법재판소는 위헌을 결정했고, 해당 규정은 폐기됐다. 

     

    하지만 양 판사는 이 일로 검찰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고 대법원장 비서실장이던 1999년 2월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법원을 떠나며 다음의 말을 남겼다.

     

     “판사에게는 칼도 없고 지갑도 없습니다. 단지 공정한 판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판사는 칼을 가진 사람이나 지갑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판받을 권리의 수호자 또는 담지자로서 판사에 대한 자긍심의 한 표현일 것이다. 양삼승에겐 회한이자 희망이었을 법관의 자긍심은 ‘공정한 판단’, 즉 공정한 재판이었다.

     

     2018년 2월 대한민국에서 양삼승이 피눈물로 외친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궤도를 일탈한 사법행정권의 그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다.

     

     지난달 22일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사법부 안팎에선 파란의 연속이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은 조사 기간 내내 찬반으로 갈려 필요성과 방식의 적정성을 두고 공방을 거듭하다 결과가 나오자 해석과 평가를 놓고 난타전을 벌인다. 한편에선 “판사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문건이 발견된 것일 뿐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핏대를 세우고, 반대편에선 “추악한 사찰의 증거로 사법행정권의 폭주”라고 비판한다.

     

     개인적으론 사법행정권 문제 자체에 대해선 관심이 크지 않다. 극단적으로 본다면, 그건 사법부 내부의 문제이고 인적 쇄신이나 제도 개선으로 해결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이 진짜 주목하는 건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제27조 제1항), 즉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을 가능성이다. 특히 공개자료 중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선고 전후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청와대와 접촉한 정황이 담긴 문건은 충격적이다. 문건 내용이 사실이고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다”는 추가조사위의 의견이 맞다면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어서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권력분립의 원리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했다. “정부 모든 부문의 위신과 안녕 및 국민의 도덕과 사회의 행복은 고결하고 훌륭한 재판의 운영에 달린 경우가 많기에 사법권은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분명히 구별되고 이들로부터 독립돼야 합니다.”

    즉 사법부가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이유는 ‘고결하고 훌륭한 재판’이라는 거다. 공정한 재판은 사법부 독립의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재판’을 취임 일성으로 내건 김명수 대법원장은 더 이상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야 할 것이다.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에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조직 내부 논리나 진영 논리에 빠져 진실 규명에 실패한다면 사법부의 미래는 없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혹시 김주대 시인의 서늘한 격문시를 가슴에 새긴다면 ‘고난의 행군’에 도움이 될지도.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라고/ 우리는 언 땅에 서서 두 손 호호 불며 아르바이트를 했고/ 야간근무를 했으며/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었고/ 과로로 죽었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살 길 찾다 죽었다/ 절망으로도 죽고/ 희망으로도 죽었지만/ 사법권은 그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됐다고 믿고/ 법은 너희들에게 맡겼다…(건방진 놈들)”

     

    *이 칼럼은 [세계일보] 2018년 2월5일자에 실린 <세계타워 블랙리스트 파문과 공정한 재판>을 전재한 것입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204002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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