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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성악가 신영옥> “단순하게 한 길을 걸어간 것이 성공 비결”
  • 운영자
    조회 수: 278, 2017.09.29 09:18:32
  • “연초부터 착실히 준비해 왔어요. 전 본래 ‘준비녀’이거든요. 부를 곡도 많지만 이번에 개관하는 IBK 챔버홀의 어코스틱이 좋다고 해 기대가 커요.”

     

    오는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IBK 챔버홀(사진) 개관을 기념한 페스티벌 개막 공연에 나서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50)씨는 준비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공연 두 개가 있었는데 모두 취소하고 이 공연으로 택했어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어코스틱도 좋고 아티스트도 가까이 볼 수 있어 1석2조의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홀 자체에 신경을 썼기에 확 트인 느낌도 들고요.”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은 김남돈 박사의 음향 설계로 탄생한 600석 규모의 실내악 전용 공연장. 예술의전당은 챔버홀 개관에 맞춰 12월13일까지 ‘클래식 스타 시리즈’ ‘영 클래식 스타 시리즈’ 등의 형식으로 페스티벌을 연다. 그를 최근 한 호텔에서 만났다.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했습니까. 

    “아리아 등 다양하게 섞었어요. 첫 곡은 저의 예술의전당 데뷔 당시 부른 이후 한 번도 안 부른 곡이고요. 드뷔시의 ‘젊은 날에 4개의 노래’ 중 ‘달빛’은 1987년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연한 당시 테이프를 다시 듣고 좋아 선택했죠. 한국에선 처음 부르는 것이죠.” 

     

    ―이번 공연에서 기대되는 신영옥만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비발디 오페라 ‘바자제’ 중 ‘나는 멸시 받는 아내라오’의 2절을 1절 후렴으로 부르는 저만의 버전이 있어요. 또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 중 ‘나는 귀여운 처녀’는 벨칸토 창법으로 불러야 하는데 소리를 모아 불릴 생각이고요. 큰 장소에선 발산하는 게 필요하지만, 작은 곳에선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하죠.” 

     

    1961년 서울에서 연구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의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신씨는 1965년 네 살이 됐을 때 KBS 어린이합창단에 최연소로 입단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엔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선발돼 4년여간 해외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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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예술의전당에서 IBK챔버홀 개관기념 페스티벌의 개막 공연을 하는 소프라노 신영옥씨는 “단순하게 한 길을 걸어간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웃었다.


    ―신영옥씨를 키운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낮에 일하고 밤에는 바늘로 다리를 찔러가며 공부하는 등 열심히 살았죠. ‘호랑이 엄마’로 소문이 나 학교에서도 긴장할 정도였죠. 반항하기도 했지만 1993년 작고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나이가 들어 보니 부모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어머니가) 그때 저를 잡아주지 않으셨으면 줄리아드와 뉴욕에서 잘 했을지 모르겠어요.”(웃음)

     

    ―줄리아드 음악학교 시절엔 어땠습니까.

    “당시에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죠. 경쟁이 치열해 서로 연습실을 뺏기지 않으려 했는데, 저는 옷을 피아노 밑에 깔아 놓고 연습실에서 자기도 했어요. 실기 시험을 볼 때에는 최고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많은 노력을 했고요.”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데뷔 무대는 기억나십니까.

    “데뷔 이야기가 상당히 와전된 것 같은데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1990년 오페라 ‘세미라미데’의 아제마 역으로 데뷔했어요. 늘씬한 사람이 거의 없어 관계자들이 저의 (가냘픈)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죠. 그다음 했던 작품이 ‘리골레토’ 질다 역이었는데, 이게 이슈가 됐어요.”

     

    실제 그는 질다 역을 맡고 있던 소프라노 홍혜경씨가 컨디션 난조로 1막밖에 할 수 없게 되자 갑작스럽게 대신해 데뷔했다. 더구나 마지막 날 공연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생중계되며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수많은 오페라에 출연하며 세계 무대에서 활동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1997년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된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를 꼽았다. 

     

    “파바로티와 함께 ‘가면무도회’에 집중하기로 한 날 밤 10시30분쯤 메트로폴리탄 캐스팅 매니저가 집으로 전화해 ‘혹시 청교도를 언제 해봤느냐’고 묻더군요. 8개월 전 토리노에서 했다고 했더니 ‘내일 오르는 청교도의 제1 소프라노가 감기에 걸렸고 커버 배우도 아프다’며 ‘연기는 하지 않아도 좋으니 오케스트라에 맞춰 노래만 해도 좋으니 해달라’고 했죠. 평소 연습을 많이 한 곡으로 자정이 넘도록 책을 꺼내 봤어요. 그리곤 오케이했죠.”

     

    그는 다음날 한 시간 정도 카덴자 등을 맞춰본 뒤 무대에 올라 자신의 끼를 맘껏 발휘했다. ‘하우 워즈 잇 굿(How was it good?)’이라는 물음에, 관계자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유어 그레이트(You’re great!)’라고 말한 것은 당연. 

     

    ―20년 넘도록 활동하고 있는데 해외 무대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희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짜증나고 울기도 했지만 쉬기 위해 스스로 남들과 차단해야 했죠. 단순하게 한 길을 간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아요. 먼 길을 달려와 레슨도 마다하지 않는 이탈리아 에치오 핀자(Ezio Pinza)의 딸 클라우디아 핀자의 도움도 컸고요.” 

     

    *이 글은 세계일보 2011년 10월3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1100300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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