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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문학비평가 유종호> “비평은 비평답게 ‘날’이 퍼렇게 서있어야”
  • 운영자
    조회 수: 128, 2017.09.29 09:29:19
  • “비평에는 시비를 거는 측면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 비판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해설로만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설 덕담이 돼 비평 고유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도 (비평의 위기를 야기한) 하나의 원인이죠.” 

     

    50년 넘게 문학비평을 해온 문학평론가 유종호(76)씨는 ‘문학비평의 위기’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비평은 비평답게 ‘날’이 퍼렇게 서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그는 최근 출간된 비평에세이집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현대문학 펴냄)에서 일본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가차없이 메스를 들이댔다. 

     

    “무라카미의 상상적 경쟁상대는 텔레비전과 스포츠와 비디오와 스테레오이다. 그 경쟁에서 그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고전이 보여주는 문학적 위엄의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119쪽)

     

    그러면서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112쪽)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 이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하급문학”(119쪽)이라고도 했다.  

     

    이밖에도 그는 이 비평에세이집에 1950년대 대학가 풍경를 비롯한 역사인식의 문제, 표절과 모작, 최근 일상 이야기 등 지난해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글을 담았다. 

     

    서울 목동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가훈이 ‘성실’인 그는 책을 요약한 노란 편지지를 양복 주머니에서 꺼내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50대부터 염색을 하지 않았다는 흰 머리칼은 비평에 대한 그의 순수한 의지를 상징하는 듯하다.  


    20110520001021_0.jpg

    <사진> 우리가 아는 과거는 단편적인 이미지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영국작가 하틀리의 말을 인용해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을 새 비평에세이집의 표제로 내세운 원로평론가 유종호씨. 지차수 선임기자


    -책에서 영국 작가 하틀리의 “과거는 외국”이라는 말을 인용, 정확한 과거의 이해를 강조하는데요.

    “역사가 하위징아는 우리가 아는 르네상스는 16세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물론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탈출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전혀 다른 수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것도 함께 알고 있어야 한다고요. 단일한 이미지로 쉽게 얘기하지만 말 한마디로 그 시대가 커버되는 건 아니죠. 과거는 우리가 잘 모르는 외국과 같은 것이기에 공부하고 노력해야 알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겁니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정부가 국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과 관련, “단순히 정치 연대기나 가르치거나 국사를 필수과목으로만 선정한다고 역사적 상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유종호씨는 또 정지용 시 ‘향수’가 미국 시인 스티크니의 ‘추억’의 모작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사소한 공통성이나 유사성을 곧 차용이나 도용이나 흉내로 간주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라면 기존 작품을 가지고 그 안에서 영감도 받고 경험이 플러스돼 새 작품이 나옵니다. 단어와 모티브의 공통성만 가지고 모작이나 표절이라고 말할 순 없죠.”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영문과와 뉴욕주립대에서 수학한 뒤 이대 강단에 섰고 2006년 연세대 특임교수직을 끝으로 교직을 마감했다. 비평은 1957년부터 이어왔다. 

     

    ―비평 활동이 50년을 넘었습니다. 

    “사실 저의 비평에도 조그만 변화가 있었어요. 20∼30대에는 사회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그런 생각을 버린 건 아니지만, 문학이 우선 된 뒤에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고 품격 있는 비평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글을 쓸 때에는 허술한 글보다 꽉 짜인 글을 쓰고 싶었어요. 말을 아껴 쓰고 적확한 말을 골라 쓰자는 걸 규칙으로 했죠. 강단을 떠난 후 쓰는 글이 많아졌지만 그 원칙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비평은 무엇입니까. 

    “정지용의 ‘향수’가 모작이라는 주장을 반박한 ‘사철 발벗은 아내가’가 떠오릅니다. 이번 비평에세이집에 실렸죠. 이례적으로 텍스트를 세세하게 분석했어요.”  

     

    -비평이 안 읽힌다거나 ‘비평의 위기’라는 말이 많은데요. 

    “해방 직후 김동석이 쓴 비평집은 많이 읽혀 6·25 직전 재판이 나오기도 했어요. 요즘 평론집이 많이 나오지만 재판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외국 이론과 철학적 용어를 빌려 해석하다보니 어려운 개념과 용어가 많아 독자들이 비평을 멀리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비평가 탓으로 돌릴 순 없죠. 근본적으로 문학을 이론적으로 심도 있게 알고 싶어하는 독자가 줄어든 것과도 관련이 있어요.”  

     

    -젊은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말 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고요. 1년쯤 읽히다 마는 작품보다 내구성 있는 작품을 써야 합니다. 존재감을 알리고 용돈도 벌자는 근시안적으로 창작을 해선 안 돼죠. 내구성 있는 작품을 써 오래 읽히는 게 행복이죠. 그래서 자기 절제를 해야 합니다.” 

     

    그는 최근 1시간 이상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한다. 눈이 아프면 가까운 공원을 거닌다.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다. 서재 한편엔 CD 300장이 빽빽이 쌓여 있었다. 광화문 서점가를 배회하는 것도 요즘 소일거리다. 광화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앉아 세월을 성찰하는 원로평론가의 소회가 애잔하다. 

     

    “서점가를 배회하면서 읽지도 못할 책을 이따금씩 사들이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삶이 전과 다름없이 무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기최면적 착각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다가올 불가피한 시간의 접근을 잊고 외면하자는 무의식의 방책이었던 것이다.”(355쪽)  

     

    *이 글은 세계일보 2011년 5월21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10520003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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