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소설가 신경숙> “땅에서 넘어졌으니 땅을 짚고 일어서는 심정으로”
  • 운영자
    조회 수: 133, 2017.09.29 09:37:40
  •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절망할 때, “동시대로부터 혹은 맺고 있는 관계로부터 마음이 훼손되거나 쓰라림으로 얼룩지려고 할 때”, 묵묵히 책상 앞으로 가 펜을 들었다. 땅에서 쓰러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고, 써야 되는 게 아니라 쓰고 싶다는 자유의 정신으로. 

     

    “인간에 대한 상처를 딛고 다른 시간 속으로 갈 수 있는 ‘견딤’ 같은 것을 주고 정반대의 모습 하나를 탄생시켜 세상에 내놓는 것, 그럼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친 세상과 마음을 균형적으로 끌어올려 놓길 바랐어요.” 

     

    빠르게 때론 느리게 오는 사계 속에서, 소설은 각성과 치유의 시간이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를 두 손으로 붙잡는 심정”의 공간이었다. ‘엄마를 부탁해’의 소설가 신경숙(48)씨가 2003년 소설집 ‘종소리’를 낸 이후 8년 만에 여섯 번째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을 펴낸 사연이다. 

     

    그는 소설집에서 쓰라린 현실에 맞서기 위해 ‘작고 가난한 자들’이 그리는 한 폭의 성화를 펼쳐보인다. ‘엄마를 부탁해’가 31개국에 수출되면서 붙은 세계적인 작가라는 ‘견장’을 잠시 떼 놓더라도, 물기 어린 문체 속에 느리면서도 깊게 오는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20111125002583_0.jpg

    <사진> 여섯 번째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을 들고 돌아온 신경숙씨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생각하는 ‘너’는 문학이었다”며 “앞문장 뒷문장을 벽돌 쌓듯이 만들어가다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너무 좋다”고 웃었다. 문학동네 제공


    ―장편을 쓰는 사이에 단편을 쓰셨습니다. 

    “장편을 쓰는 시간도 작가로서 충만했지만 단편을 쓰는 시간도 좋았어요. 장편은 급류에 휩쓸려 휘몰아치듯이 긴 시간을 가는 느낌이라면, 단편은 어두운 풍경 속에 반짝하는 빛을 보는 순간이 좋아요. 이야기와 서사, 문체가 결합하며 겪어내는 순간들이 좋죠. 단편을 쓸 때는 보이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이 빛나는 순간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어요.” 

     

    신씨의 이번 소설집은 장편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차례로 내는 2003년부터 2009년 사이 틈틈이 발표한 단편소설 7편을 모은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지난 8년 중에 내가 가장 침울했을 때나 내적으로 혼란스러웠을 때 쓰였다”고 하셨는데요.

    “힘들지 않은 삶이라는 게 가능한가요. 땅에서 넘어졌으니 땅을 짚고 일어나는 기분으로 쓴 작품이 여럿 있어요. 예를 들면 ‘어두워진 후에’를 쓸 때는 아침마다 연쇄살인 사건 기사들로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할 정도로 세상에 절망했죠. 작품을 씀으로써 상처를 받아들이고 다른 시간 속으로 갈 수 있는 견딤 같은 걸 줬어요. 정반대의 모습 하나를 탄생시켜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을 조금 균형적으로 끌어올려 놓는 느낌을 주었죠.”

     

    2004년 발표된 ‘어두워진 후에’는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고 떠도는 남성이 낯선 여성으로부터 조건 없는 환대를 받고 불행한 사건으로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왜 세상의 모든 ‘작고 가난한 자들’에 대해 간절한 발신음을 보내셨습니까. 

    “지금 다들 너무 우울하고 고독하며 커다랗고 인간적인 것과 반대되는 쪽으로만 치우친 삶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로를 발견해 자기화시키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소설로 읽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많은 삶들이 받쳐주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아버지와 딸, 낙천아저씨와 순옥 언니의 오랜 인연과 화해를 담은 단편 ‘세상 끝의 신발’에서 성공한 발레리나의 토슈즈 속에 감춰진 거칠고 나무등걸 같은 발은 성공 또는 완성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여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세상 끝의 신발’에서 아버지의 체념적인 목소리가 오히려 주인공을 이끄는 이유가 뭔가요.

    “누군가 끈을 놓아버리려 할 때 ‘내가 조금 움직이면 저 끈을 잡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인간 아닐까요. 아버지의 체념 속에는 분노가 아니라 배려가 있고 그 배려에 의해 딸이 움직이는 거죠. 얼른 보기에는 크고 눈에 확 띄는 것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잘 보이지 않으면서 언제나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는, 평범해 보이는 삶들이 변화의 가장 큰 기둥이죠.” 

     

    ―모르는 자들에 대한 옹호쯤 될 이번 소설에는 모든 불온한 차이를 옹호한 철학자 질 들뢰즈의 ‘차이의 존재론’이 어른거립니다. 

    “돌출돼 있고 이름을 부르면 알 수 있는 것 말고 모르는 익명의 존재나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가진 것을 발견해 내는 데에 문학의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전 모든 개인의 삶은 하나하나가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할 때 문학은 그것을 거슬러 가야 하고, 이면을 볼 수 있는 눈 같은 게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내식대로 살아야 하는 의무가 있죠.” 

     

    *이 글은 세계일보 2011년 11월12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11125004267

댓글 0 ...

위지윅 사용
번호
제목
닉네임
10 운영자 144 2017.09.29
9 운영자 175 2017.09.29
운영자 133 2017.09.29
7 운영자 1759 2017.09.29
6 운영자 128 2017.09.29
5 운영자 1998 2017.09.29
4 운영자 278 2017.09.29
3 운영자 7741 2017.09.29
2 운영자 117 2017.09.13
1 운영자 116 2017.09.1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