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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日 후쿠시마 원전사고 3년… 돌아오지 않는 봄] (上) 모리아이초 가설주택 르포
  • 운영자
    조회 수: 411, 2015.07.10 10:57:30
  • “내 인생은 이곳에서 ‘오와리(끝)’이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달 26일 오후 3시, 후쿠시마(福島)시 모리아이초(森合町)의 한 가설주택.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후타바(雙葉)군 나미에초(浪江町)에서 피난온 마츠다 노리아키(松田範明·78)는 사연을 얘기하다 말고 이렇게 말을 흐렸다. 처진 그의 어깨 위에 내걸린 사진 속에선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각료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마츠다는 나미에초 사람들이 피난해 있는 이곳에서 3년째 혼자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생일(11월30일)도, 올해 설도 혼자였다. 공간이 협소(보통 19.8∼29.7㎡)해 자식들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혼자 식사를 해결하고 오후 7시쯤 잠드는 고단한 생활의 연속이다. 이날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근처에서 꽃을 사와 꽃병에 꽂기도 했다.

     

    “정부의 방사능 제염 작업이 너무 느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머지않아 80세인데, 결국 80이 넘으면 이곳에서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괜찮으냐’고 매일 건강 상담은 받고 있지만….”

     

    마츠다는 이곳에 오기 전 나미에초에서 자식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곳은 야산이 많아 공기도 좋았고 농사의 특성상 잠시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다. 큰 돈을 벌진 못했지만 즐겁고 건강했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발생한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고 당시 딸의 집에 머물고 있던 그는 높은 방사능 선량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딸의 집에 더 머물다 그해 8월 이곳으로 들어왔다. 가재 도구는 하나도 챙기지 못했고 자식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사고 후 2, 3번 정도 나미에초 집을 둘러봤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그가 살던 나미에초는 방사성 물질이 곳곳에 퍼져 방사능 선량이 50밀리시버트(mSv) 이상인 ‘귀환곤란 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옆 가설주택에 사는 노인 가와자키 카요코(72)도 건강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느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가설주택 생활이 2년 반이 넘어서면서 이젠 익숙해졌다”며 “스트레스를 담아두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와자키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산책을 하고 쇼핑이나 취미생활도 한다. 사고 이전 나미에초에서 어머니와 아들 등 가족 7명이 함께 3ha에 이르는 농사를 지었던 그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지만 행복했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2011년 사고 이후 가와자키는 어머니와 이곳으로 피난했고 아들 가족은 이와키시로 피난했다. 올해 설은 아들 가족이 피난해 있는 이와키시로 가 보냈지만, 생일날에는 공간이 너무 좁아 자식 가족을 부르지 못하고 생일 케이크를 사먹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이곳 가설주택의 마츠모토 오시오(松本敎夫·76) 자치회장은 “가장 힘든 것은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2만3000여명의 나미에초 주민들은 사고 이후 후쿠시마시나 이와키시는 물론 도쿄, 사이타마 등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27일 오후, 미나미소마(南相馬)시 가시마초(鹿島町)의 한 가설주택. 2016년 10월부터 피난이 풀리는 오다카(小高)구에서 온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선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집합소’라고 쓰인 가설주택의 ‘살롱’에는 체조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몇 사람은 차를 마시며 환담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 요코하마의 아들 집에 얹혀 지내다 그해 8월 이곳으로 온 우메다 치즈코(68)는 “특별히 생각한 것은 없지만, 방사능 제염작업이 끝나면 나와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 이전 어머니와 남편, 아들 내외와 손자 3명 등 8명이 한집에서 즐겁게 생활하던 것을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어머니는 사고 후 고향을 보지 못하고 가설주택에서 세상을 떴고, 아들네 가족도 아이들이 어려 방사능과 학교 문제로 귀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구 1만3000여명의 오다카구 주민들은 사고 후 미나미소마 가설주택에 약 7000명이 피난해 있는 등 전국 각지에서 피난생활 중이다.

     

    2011년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앗아간 것은 집이나 돈만이 아니었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열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삶에 대한 희망이나 소중한 가족을 잃어가고 있었다. 햇살은 따뜻해졌지만, 후쿠시마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후쿠시마시·미나미소마시=김용출 특파원 kimgija@segye.com

     

    <사진 설명>

    지난달 26일 후쿠시마시 모리아이초의 한 가설주택 안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후타바군 나미에초에서 피난해온 마츠다 노리아키(松田範明·78)가 가족들의 사진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귀환곤란구역’으로 지정된 후타바군 나미에초에서 피난해온 주민들이 지난달 26일 오후 후쿠시마시 모리아이초의 한 가설주택 앞에서 아직 돌아갈 시기조차 확정되지 못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용출(2014. 3. 3). [日 후쿠시마 원전사고 3년… 돌아오지 않는 봄] (上) 모리아이초 가설주택 르포. [세계일보],  2014년 3월3일자, 8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3/02/20140302003350.html?OutUrl=naver

     

    [日 후쿠시마 원전사고 3년… 돌아오지 않는 봄] 가설주택 ‘위안의 살롱’ 운영 곤노 요시키

    “가설주택 생활 초기에는 주민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과 함께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드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면, 이제는 2016년 10월 귀환할 때까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南相馬)시 가시마(鹿島)구에 위치한 가설주택에 ‘위안의 살롱’을 운영하며 피난민을 돕는 ‘미나미소마를 이어주는 모임’의 곤노 요시키(今野由喜·63·사진) 대표는 지난달 27일 향후 활동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곤노는 2012년부터 미나미소마시 오다카(小高)구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주로 있는 가설주택에 ‘위안의 살롱’ 4곳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살롱은 책과 TV, 인터넷은 물론 각종 헬스 도구도 비치돼 있어 피난민들의 교류와 건강 유지의 공간이 됐다.

     

    IT 기술자로 도쿄 등 대도시에 살던 그는 4년 전 정년퇴직 후 오다카구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해 귀향해 부모와 장남 부부 등 8명과 오순도순 살았다. 하지만 2011년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에 집을 잃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아예 오다카마저 떠나야 했다. 곤노는 처음엔 야마가타(山形)현으로 피난 갔지만 두 달 만인 5월 혼자 미나미소마로 돌아와 라디오 재해방송을 하며 고향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가설주택에서 사는 이들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2011년 12월 모임을 결성한 뒤 한 달 만인 2012년 1월 첫 ‘살롱’을 개설했다.

     

    현재 그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일본국제볼런티어센터(JVC)’ 등 여러 구호단체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내년 3월까지의 예산은 확보했지만 이후 예산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살롱 1곳마다 유급 직원 1명씩, 예비 직원 1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을 고용하고 있다. 미나미소마시=김용출 특파원

     

    김용출(2014. 3. 3). [日 후쿠시마 원전사고 3년… 돌아오지 않는 봄] 가설주택 ‘위안의 살롱’ 운영 곤노 요시키. [세계일보], 2014년 3월3일자, 8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3/02/20140302003352.html?OutUrl=naver

     

    제1원전 수습작업 ‘하세월’ 폐연료봉 실태 파악도 못해

     

    3년 전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은 현재 수습작업이 더디게 진행 중이다. 원전 건물 안에 녹아내린 폐연료봉의 실태는 아직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태이고 폐로 작업도 최장 40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오염수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상 저장탱크 보수작업을 비롯한 사고 수습작업과 함께 최장 40년을 목표로 폐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폐로 작업은 지난해 11월부터 4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를 공용 수조로 옮기는 작업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현재 400개 가까이 옮겼고, 앞으로 1000여개가 남아 있다.

     

    지난달 25일 오전에는 원전 내 전원 설비에 이상이 발생해 4호기 냉각 시스템이 4시간 반에 걸쳐 정지돼 핵연료 냉각이 일시 정지됐고, 지난해 8월에는 지상의 저장탱크에서 오염수가 대거 유출돼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사고 당시 방사능 물질이 유출된 원전 인근 지역의 제염 작업도 더뎠다. 27일 국도 6번을 따라가면서 ‘피난지시해제 준비구역’인 후타바(雙葉)군의 나미에초(浪江町)와 미나미소마(南相馬)시의 오다카(小高)구 등 피해 지역을 둘러보았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10㎞ 안팎에 위치한 나미에초는 대부분 지역이 방사선량이 50밀리시버트(mSv) 이상인 ‘귀환곤란 지역’이고, 일부 지역만 ‘피난지시해제 준비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일반인의 연간 방사능 노출 한도(국제방사선 방호위원회 권고)는 1mSv, 방사선작업 종사자의 연간 선량한도는 50mSv이다. 때문에 중앙정부나 도쿄전력, 지자체 등의 통행증을 받은 경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용된다. 멀리서 본 집이나 가게 등의 외관은 멀쩡했지만,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유령 도시였다. 서까래가 내려 앉아 흉물스럽게 변한 집도 가끔 눈에 띄었다.

     

    인접한 미나미소마시 오다카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6년 10월 이후 피난 지시가 해제될 예정이지만, 방사능 제염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3년 전 쓰나미에 쓸려왔던 배가 논밭에 뒹굴고 있거나 자동차로 거꾸로 처박힌 모습 그대로였다. 미나미소마시·나미에초=김용출 특파원

     

    김용출(2014. 3. 3). 제1원전 수습작업 ‘하세월’ 폐연료봉 실태 파악도 못해. [세계일보], 2014년 3월3일자, 8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3/02/20140302003351.html?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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