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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비선권력 제8화> 기이한 종교 행각: 가톨릭에서 영세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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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2396, 2017.09.10 21: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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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최태민은 1973년 5월13일자 대전일보 4면에 ‘영세계(靈世界)에서 알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광고를 내보냈다. 대전일보

     

    한때 승려가 되기도 했던 최태민은 1969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종교활동을 시작했다. 임선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사이 최태민은 전국 곳곳을 전전하며 종교 활동을 했다.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는가 하면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를 아우르는 신흥종교 ‘영세교’를 만들기도 한다.

     

    최태민은 먼저 1969년 ‘천주교 중림성당’에서 신분을 속이고 ‘공해남’이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중앙정보부, 1979. 10. 23, 3쪽 참고). 최태민이 영세를 받았다는 ‘중림성당’은 현재 그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데, 아마 서울 중구 중림동에 위치한 ‘약현성당’으로 추정된다. 약현성당은 서울 중림동에 위치해 ‘중림동성당’이라고도 불렸다. 약현성당은 1892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으로 유명하다.

     

    최태민은 1971년 10월 서울 영등포구 방화동에 위치한 ‘호국사’에서 불교를 믿다가 기존 종교를 통합해 신흥종교 ‘영세교’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글과 네이버 등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호국사라는 절을 찾을 수 없었다. 경남 진주시 남성동에는 유명한 조계종 사찰 ‘호국사(護國寺)’가 있다.

     

    최태민이 만든 신흥종교 영세교의 핵심 교리는 불교의 깨달음과 기독교 성령강림(聖靈降臨),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을 통합한 ‘영혼합일법(靈魂合一法)’이었다. 관련 사료가 없어 최태민이 주장하는 영혼합일법의 정확한 개념이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합일(合一)’이란 육체와 영혼, 감성과 이성, 순간과 미래 등 다양한 차원의 존재가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육체와 영혼의 결합 등을 통한 해방을 추구하는 개념이 아닌가 추정된다.

     

    최태민은 이 즈음 ‘방민’이라는 가명을 쓰면서 독경 및 안찰기도로 환자를 치유했다고 한다. 최도원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그는 최상훈, 최봉수, 최퇴운, 공해남, 방민, 최태민 등 최소 7개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최도원은 ‘선녀가 지었다’는 아명(兒名)이고, 최상훈은 월남 후 개명해 경찰이나 육군 및 해병대 등 비공식문관 재직 때 사용했으며, 최봉수는 부산에 살 때 사용한 이름이었다. ‘퇴운’은 최태민의 호(號)였고, 공해남은 천주교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할 때 개명한 이름이었으며, 방민은 영혼합일법 등 사이비 행각할 때 사용했던 이름이었다. 호적상 이름으론 1977년 3월9일 이전에는 최퇴운이었고 그 이후엔 최태민으로 고정했다(중앙정보부, 1979. 10. 23, 1-3쪽 참고).

     

    최태민은 이와 관련, 생전 인터뷰에서 ‘이름이 7개라는 주장이 있다’는 질문에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내가 1912년생입니다. 우리 세대만 해도 본명 외에 아명도 있고 자(字)도 있고 호도 있었습니다. 7개가 되지도 않지만 이런 것이 7개라면 또 몰라도…이름이 7개씩이나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어요. 더욱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때마다 이름을 바꿨다고 하는 모양인데 말도 안돼요. 내 호로 퇴운이 있었어요. 시기가 정확히 기억 안나는데 내가 ‘입산수도’하고 있던 시절에 월남한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가(假)호적법이 만들어졌어요. 그때 나를 알던 사람이 멋대로 호적에 퇴운을 이름으로 올렸더군요. 호로 쓰던 것이어서 1975년 태민으로 개명했죠. 호적상의 개명은 이것뿐입니다.”(유인종, 1990. 12a, 254-255쪽)

     

    1973년 5월13일. 최태민은 『대전일보』 4면에 ‘영세계(靈世界)에서 알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광고를 내보냈다.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 근계시하 귀체만복하심을 앙축하나이다. 영세계 주인이신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이 이 고장에 오시어 수천년간 이루지 못하며 바라고 바라든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조물주께서 주신 조화로서 즉각 실천시킨다 오후니 모두 참석하시와 칙사님의 조화를 직접 보시라 합니다. 장소: 대전시 대흥동 현대예식장 일시: 5월13일 오후 4시.”

     

    광고는 영세계 교리를 소개하기 위한 대전 집회의 안내문이었다. 광고에 등장한 ‘칙사(勅使)’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신’. 최태민은 스스로 영세계 교리를 전하는 메신저로 규정한 것으로, 사실상 구세주임을 자임한 셈이었다. 최태민은 신문 광고대로 이날 오후 4시 대전시 현대예식장에서 영세계 칙사를 자칭하고 영혼합일법을 설교했다. 이날 현대 예식장에는 각종 환자와 계룡산 주변의 신흥종교 교주들을 위시해 무속 잡인 수십명이 모여 원자경 교주의 영세계원리를 청강했다(탁명환, 1988. 4, 119쪽 참고)

     

    1973년 7월에는 대전 시내에 “찾으시라! 그리고 들으시라! 대한민국은 세계 주인국이 될 운세를 맞이했다는 칙사님의 권능과 실증의 말씀을”이라는 영세교의 전단이 뿌려졌다. 최태민이 뿌린 전단이었다. 최태민은 광고에서 대전시 선화1동 동사무소 앞에 임시 숙소를 마련하고 ‘영세교 칙사관’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고 밝혔다. 최태민의 대전 숙소 ‘감나무집’를 찾은 종교연구가 탁명환(1988. 4, 121쪽 참고)에 따르면 최태민은 감나무집 벽에다 둥근 원을 색색으로 그려놓은 것을 붙여놓고 사람이 찾아오면 그것을 응시하면서 ‘나무자비 조화불’이란 주문을 계속 외우도록 했다. 최태민은 이렇게 하면 만병통치하고 도통의 경지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최태민은 대전에서 ‘영세교 교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 일종의 최면요법으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신통력 있는 ‘칙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김수길, 2016, 40-41쪽 참고).

     

    최태민은 대전에서 성공한 것을 바탕으로 서울에도 진출했다. 그는 1973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67-5 대현빌딩에 전세를 얻어 ‘영세교’라는 간판을 내걸고 ‘원자경’을 자칭했다. 1974년 5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 122-16번지로 옮겼다가 1974년 8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54-5번지 빌딩 3층으로 이사해 ‘태자마마’를 자칭하며 사이비 행각을 이어갔다고 한다(중앙정보부, 1979. 10. 23, 3쪽 참고).

     

    영세교 활동을 이어오던 최태민은 1975년 3월6일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박근혜를 만나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는다. 박근혜의 정치적인 가능성을 간파한 그에게 ‘유신 공주’ 박근혜는 새로운 ‘마법의 길(Magic Road)’이었다(윤석진, 1993. 11, 196-226쪽 참고).

     

    *단행본 [비선권력] 서평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13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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