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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의 화쟁 루트(和諍 Route)

  • <비선권력 제11화> ‘단국대 청강생’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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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237, 2017.09.10 21: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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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공주’ 박근혜와 ‘비선 실세’ 최태민 사이의 커넥션이 맺어진 1975년 3월. 찢어진 눈매의 한 여성이 정식 대학생이 아닌 청강생 신분으로 단국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최태민의 다섯째 딸 최순실이었다. 단국대 관계자는 ‘최순실이 단국대 영문학과 청강생이었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네 맞아요. 청강생이에요”라고 최순실이 단국대 청강생 출신임을 확인했다. 청강생은 입학금과 수업료 등만 내면 정원 외로 수업을 듣게 해주는 제도로, 4년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은 주지만 학사 학위는 받을 수 없다(김민욱, 2016. 10. 27, 2면; 송지욱, 2016. 10. 27 참고).

     

    최순실은 왜 하필 단국대를 선택했을까. 그것은 아마 최순실의 자매가 단국대와 상당한 인연이 있었던 게 한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최순실의 언니 최순영은 단국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또다른 언니 최순득의 남편 장석칠도 단국대를 졸업했다. 여동생 최순천과 서동범 부부는 단국대 성악과와 무역학과를 각각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의 단국대 영문학과 동기는 이와 관련,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최순실과) 같이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순실이 대학 시절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최순실은 나중에 단국대 대학원 영문학과에 연구과정으로 입학했다(김민욱, 2016. 10. 27, 2면 참고).

     

    최순실은 최태민의 뒤를 이어 비선 세력의 중심 인물이 된다. 즉 그는 박근혜-최태민 커넥션을 확대하고 강화하면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최악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를 탄핵까지 이르게 했다. 최태민의 뒤를 잇지만 성취와 악행 측면에서 최태민을 훌쩍 뛰어넘어선, 진정한 거악(巨惡)이었다.

     

    최순실은 1956년 6월23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최태민과 임선이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태민의 다섯째 딸이었고, 최태민과 임선이 사이에선 2번째 딸이었다. 1952년 태어난 박근혜에 비해 4세가 어린 셈이다.

     

    최순실의 어린 시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지만 상상력이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매우 능했다고 한다. 최태민과 그의 네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최순실의 이복오빠 최재석의 증언이다. “그때 애가 영특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요? 공부를 잘했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건 아니고, 그건 전혀 아니고요. (공부 잘하는 건 전혀 아닌데?) 우리 집안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웃음)…잔머리라든가 이런 거. (잔머리…) 지어내고 이런 거. 이런 상상력은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임기응변이 능했군요, 그러니까.) 능했습니다.”(CBS라디오, 2017. 1. 17)

     

    최순실은 고교 시절부터 유아교육에 관심이 있었다고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지만 대학 진학은 유아교육이 아닌 영문학과로 진학하게 된다(최순실, 1987. 10, 160쪽; 이광표, 1987. 10, 327쪽 참고).

     

    최순실은 자녀 중에서 최태민과 가장 가까웠다. 최순실 스스로 나중에 아버지 최태민을 자신보다 더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난 아버지와 무척 가깝다. 가깝다기보다는 서로가 이해와 사랑으로 쌓아온 세월들이었을 거다. 나보다 더 아버지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최순실, 1987. 10, 158쪽)

     

    최순실은 고집이 상당해 아버지 최태민의 말도 잘 듣지 않는 등 ‘보스 기질’이 상당했다고 한다. 최순실 17년 운전기사 김모씨의 증언이다. “(생전에) 최태민 회장이 ‘다른 딸이나 할매(임선이)에게 얘기하면 다 듣는데, 순실이는 지 아버지(최태민) 말도 안듣는다’고 하더라. 순실이는 고집이 상당하다. 그건 최(태민) 회장이 한 얘기요.”(김용출 이천종 조병욱 박영준, 2016. 11. 23, 8면)

     

    최태민도 9명의 자녀 가운데 최순실을 가장 총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 이상호는 최태민이 최순실을 특별히 총애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의 현몽(現夢), 꿈을 통한 예지력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순실이야말로 최태민의 후계자이자 적장자(嫡長子)였다는 거다(이상호, 2016. 10. 12 참고).

     

    박근혜와 최태민 사이의 커넥션을 실질적으로 보좌한 사람도 등장한다. 1975년 8월14일부터 서울 덕수궁에서 열렸던 육영수 1주기 추모 사진전을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성공시킨 사람은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였다. 조순제는 임선이의 주선으로 사진전을 준비, 기획했다. 조순제는 육영수 1주기 추모 사진전을 성공시키면서 최태민과 박근혜의 신임을 얻게 돼 박근혜-최태민 커넥션과 연결되기 시작한다(조용래, 2017, 43-45쪽; TBS, 2016. 3. 8 참고).

     

    1940년 임선이와 조동찬 사이에서 태어난 조순제는 1965년 간호사 출신인 김경욱과 결혼했고, 1968년 아들 조용래를 낳았다. 조순제는 1967년 사촌 누나의 남편인 이원우 공보부 장관의 비서관으로 일했고, 1971년 서울 서대문구 갑에서 공화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낙선 뒤에는 한동안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조순제는 박근혜-최태민 커넥션에 합류한 이후 대한구국선교단의 홍보실장을 맡아 활동하게 됐다. 조순제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대한구국선교단과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으로 이어진 활동에서 박근혜 및 최태민과 함께 ‘3인 체제’를 형성했다고 기억했다. 즉 조순제는 1970-80년대 박근혜와 최태민간 커넥션 유지와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조용래, 2017, 29-36쪽 참고).

     

    *단행본 [비선권력] 서평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13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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